포항 고3 “학교 무너질까 불안해 신경안정주사 맞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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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5일만에 초중고교 첫 등교
한 호텔은 수능생에 객실 무료 제공

벽 갈라진 학교로 경북 포항고 학생들이 20일 갈라진 벽 옆을 지나며 교내 계단을 오르고 있다. 포항고에는 지진 발생 이후 휴교령이 내려졌다가 이날 처음으로 학생들이 등교했다. 포항=박경모 기자momo@donga.com
벽 갈라진 학교로 경북 포항고 학생들이 20일 갈라진 벽 옆을 지나며 교내 계단을 오르고 있다. 포항고에는 지진 발생 이후 휴교령이 내려졌다가 이날 처음으로 학생들이 등교했다. 포항=박경모 기자momo@donga.com
“학교가 무너질까 불안해 신경안정주사까지 맞았어요.”

20일 오전 경북 포항시 북구 대동고 정문을 지나던 3학년 조모 군(18)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핏줄이 터진 듯 두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이날은 지진 발생으로 휴업했던 포항 지역 초중고교의 첫 수업 날이다.

지진으로 집까지 곳곳에 금이 가면서 조 군은 그동안 포항 근처에 살고 있는 친척집을 전전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봐야 하는 수험생이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책을 펼쳐도 머릿속에는 지진 당시의 충격이 계속 떠올랐다.



5일 만에 다시 찾은 학교. 건물 주변에 떨어졌던 벽돌은 모두 치워져 있었다. 하지만 건물 곳곳의 균열은 그대로였다. 이를 보던 조 군은 “어떡하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전 9시. 등교 시간이 됐지만 교실의 몇몇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다른 수험생들의 불안감도 조 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감해진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교 교실 위치를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실이 1층이 아닐 경우 지진이 났을 때 대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포항 지역 한 수험생 학부모는 “학교에서 수험생들이 머무는 교실은 적어도 높은 층을 피하는 배려를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긴장이 떠나질 않으면서 건강까지 나빠진 수험생도 있었다. 포항중앙여고 3학년 정모 양(18)은 지진 발생 후 흥해실내체육관 대피소에 머물렀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최대 1000명이 머물다 보니 결국 감기에 걸렸다. 다행히 포항의 한 호텔에서 19일부터 수능 당일까지 방을 무료로 제공해 거처를 옮겼다. 학교에 나온 정 양은 “공부를 더 하기보다 컨디션 조절이라도 잘했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한편으론 고생한 가족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 학생들도 많았다. 유성여고 박모 양(18)은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부모님이 나만 공부하라고 외갓집으로 보냈다. 몸 고생, 마음고생을 한 부모님을 위해 수능 당일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여고 3학년 이모 양(18)도 “수능 당일 여진이 없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구특교 kootg@donga.com·김단비 기자
#포항#수능#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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