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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동정민]100년을 좌우한 잘못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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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동정민]100년을 좌우한 잘못된 선택

동정민 파리 특파원 입력 2017-11-20 03:00수정 2017-11-2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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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레닌이 왜 땅속이 아닌 땅 위에 묻혀 있는 줄 아세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길거리에서 만난 18세 안토니에게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전시 중인 레닌 시신의 철거 논란에 대한 의견을 묻자 대뜸 이런 질문이 되돌아왔다. 그는 “레닌은 당시 권력을 잡고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코 나눠 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레닌은 아직도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거예요”라고 비꼬았다.

100년 전 러시아혁명의 구호는 ‘빵, 토지, 평화’였다. 권력을 잡은 공산주의 볼셰비키는 노동자에게는 빵을, 농민들에게는 토지를, 군사들에게는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식량은 여전히 부족했고, 토지는 오히려 농민에게 뺏어 집단농장으로 국유화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동족 간 더 참혹한 내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100년 후 지금의 모습 역시 그들의 꿈과는 거리가 멀었다. 혁명의 불길이 치솟았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다니는 버스는 당장 멈춰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고 녹슬어 있었다. 우중충한 색깔과 낡은 집, 길거리 곳곳을 다니는 군인들은 마치 우리나라 1970, 80년대를 연상케 했다. 한때 미국과 경쟁했던 강대국의 면모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은 이뤘을까. 노동자들의 법적 최저임금은 15만 원에 불과하다. 최저임금 개념이 있는지를 아는 러시아인들도 거의 없다는 게 현지인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완벽하게 보장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노조는 있지만 파업이나 과격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한국 강성 노조만도 못한 파워였다.

자본주의의 맛을 보기 시작하면서 소비는 커지는데 소득은 따라가지 못하고, 연금과 복지 체계는 빈약해 빈부 격차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그런데도 만나 본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그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래도 예전보다 낫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억압과 가난 속에서 살던 사회주의 시대와 급작스러운 체제 전환으로 연간 1500%에 달했던 인플레이션에 고통 받던 1990∼2000년대를 거치면서 가난과 혼란에 무뎌져 있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건 결국 위정자들이 문제였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100년 전 혁명 이후 공산주의가 아닌 의회 민주주의나 입헌군주제로 정착됐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자초한 게 당시 국회의원들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10년도 전인 1906년 의회 ‘두마’가 탄생했다. 1905년 1000명이 넘는 희생을 치르며 시민들이 황제 니콜라이 2세를 압박해 얻은 결과였다. 그러나 그들은 무능했다. 러시아정치사박물관 알렉산드르 게오르기예비치 기획팀장은 “혁명이 불붙던 시절 국회의원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고 1차대전이 시작되자 완전 무력해졌다”며 “심지어 혁명의 낌새가 보이기 시작하자 많은 국회의원이 해외로 도피했다”고 말했다.

이 틈을 타 권력을 잡은 레닌은 혁명에 성공한 지 3개월 만에 의회를 해산했다. 사회주의 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레닌과 스탈린의 공포 정치는 수십 년간 계속됐다. 러시아의 뒤처진 민주주의와 경제 현실에 비춰 보니 성공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20세기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등 러시아혁명에 붙은 수많은 수식어들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100년 전 러시아에서는 무능한 국회의원이 혁명과 독재를 낳았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 시신 철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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