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그린의 敵은 그린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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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환경부가 최근 경북 영양에 조성 중인 풍력발전단지에 대해 공사중지명령을 내렸다. 업체가 이 일대 19만 m²에 풍력발전기 22기를 건설하기 시작한 지 1년 반 만이다. 이유는 공사장 주변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 일가족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천성산 터널에 대해 공사중지명령을 내린 적은 있으나 환경부 자체적으로 공사중지명령을 내린 것은 처음이다.
 
풍력 태양광 곳곳서 암초
 
2004년 당시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천성산 도롱뇽을 보호해야 한다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던 지율 스님을 찾아가 “2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 공사는 중단됐다. 도롱뇽 논쟁의 허무한 결말을 복기하려는 게 아니다. 영양 풍력단지는 수리부엉이 외에도 산림 훼손과 산사태 위험 등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어 공사 중지는 불가피했다고 본다. 주목해야 할 이유는 이번 조치가 탈원전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불안한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양은 산이 많고 바람이 거센 지형을 기회로 활용해 전국 최대의 바람개비 마을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59기의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많은 주민들이 블레이드(날개) 돌아가는 소음과 저주파로 인한 수면장애, 농작물과 가축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경북 청송 노래산 등 풍력단지가 건설되는 곳곳마다 이런 시비가 일어나지 않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풍력은 바람의 질이 중요해서 짓고 싶어도 아무 데나 지을 수 없고, 산의 능선을 따라 건설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산림 훼손은 불가피하다. 흥미로운 건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는 환경단체가 풍력단지를 반대한다는 점이다. 환경단체들은 “맹동산 일대가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됐고 주민들은 소음과 저주파, 송전탑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공사 중지를 요구하고 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으로 행동하라’는 환경단체의 오랜 모토인데 지구적으로는 풍력에 찬성하면서도 지역적으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환경단체가 빠진 것이다. 일종의 환경단체판 ‘님비(NIMBY)’인 셈이다.

입지 부족과 주민 반대 때문에 최근엔 해상풍력이 부상하고 있지만 바다 생태계 파괴, 철새에 대한 영향, 어민 반대 등 돌파해야 할 난관이 첩첩산중이다. 여기서도 환경단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제주 해상풍력지구가 지정되자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해상풍력이 돌고래 서식지를 파괴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태양광발전의 설립 여건도 암담한 건 마찬가지다. 영광원전과 영광솔라파크를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같은 발전량을 만들어 내는 데 태양광단지가 원전보다 540배 부지가 더 필요하다. 서울 전체를 태양광 패널로 덮어도 영광원전 6기의 발전량을 얻을 수 없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평평한 부지를 확보하려면 나무를 베어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숲 보호 단체가 반발한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 또 다른 환경을 파괴하는 현상을 두고 라이언 용크 미국 유타주립대 교수는 그린의 적이 그린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탈원전보다 신재생 어려워

신재생에너지는 인류가 도달해야 할 궁극의 에너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현재 1.9%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20%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수리부엉이가 풍력을 멈춘 데서 보듯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탈원전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환경보호에 있어 충돌하는 가치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정부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환경단체판 님비#멸종위기종 수리부엉이#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불안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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