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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비판 기사 보기 힘들어… 사라지지 않은 억압의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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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비판 기사 보기 힘들어… 사라지지 않은 억압의 잔재

동정민 특파원 입력 2017-11-15 03:00수정 2017-11-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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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100년/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다]<下> 자유 억누른 독재의 유산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자본가들의 집을 빼앗아 인민들에게 방 한 개씩 나눠준 코무날(공동주택)은 지금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남아있다. 3일 방문한 이곳은 5가구 10명이 화장실과 샤워실, 부엌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좁은 복도(왼쪽 사진)를 중심으로 방이 양옆에 있고, 공동 부엌(오른쪽 사진)에는 가구별로 전용 수납장과 냉장고를 한 개씩 놓을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동정민 특파원
“혁명이 일어날까 무서워서겠지요.”

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핀란드역, 공산당 집회를 취재하러 나온 한 인터넷 언론 기자에게 “혁명 100주년인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아무 기념행사도 없이 왜 이렇게 조용히 보내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기자가 “그런 이야기를 언론에 쓸 수 있느냐”고 묻자 대뜸 작은 페트병을 내밀었다. 병 속에는 독한 보드카가 들어 있었다. 그는 “푸틴 정권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200명이 넘는 언론인이 죽었다”며 “나도 푸틴 비판 기사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서워서 이렇게 술을 먹고 있지 않나. 당신도 한잔 하라”며 술을 권했다. 그는 “(러시아) 신문은 그나마 약간의 자유가 있지만 TV와 인터넷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면서 한국의 언론 환경에 대해 질문하기도 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경제 체제는 자본주의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지만 사회주의 시절 억압의 잔재는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을 강하게 억누르고 있었다. 국영 방송이 대부분인 TV에서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는 찾기 힘든 분위기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건너편 ‘고로호바야 2번지’는 러시아인들에게 공포의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185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비밀경찰 청사가 있던 자리로 한국으로 치면 남영동 대공분실 터 같은 곳이다. 절대군주제 시절부터 시작된 비밀경찰이나 정보기관은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더욱 기승을 부렸다. 레닌이 1917년 12월 혁명 직후 창설한 체카는 매일 밤낮으로 이곳에 자본가들을 끌고 와 가뒀다. 그들에게서 뺏은 귀중품들을 담은 박스로 사무실은 가득 찼다. 레닌과 스탈린 체제를 거치면서 영장 없이 시민을 체포하고 구금하거나 수용소로 보내고 처형까지 하는 공포정치는 계속됐다.

국립 러시아정치사박물관은 2015년 ‘톱 시크릿’을 주제로 국가정치총국(GPU)-내무인민위원회(NKVD)-국가보안위원회(KGB)로 이름을 바꾼 정보기관의 ‘흑역사’를 다뤘다. 이런 민감한 소재를 다룬 건 이 박물관 역시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 말∼1950년대 중반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전시품 12만∼13만 점이 사라졌다. 당시 정부가 사회주의 혁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시품을 압수해 모두 소각했기 때문이다. 예브게니 그리고리예비치 관장은 “당시 정부가 그런 전시품을 기증한 일반 시민까지 모두 처벌해 아직도 시민들이 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며 “당의 노선에 맞지 않는 연구를 하는 박물관 연구원도 여러 명 체포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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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을 억누르는 감시와 가난의 대표적 흔적이 바로 공동주택 코무날이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자본가들의 집을 빼앗아 시민들에게 방 한 칸씩 나눠주고 화장실과 욕실을 공동으로 쓰게 한 집단 아파트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코무날이 꽤 많다. 6일 방문한 바실리섬의 한 코무날은 한 층에 방 6개가 있고 이곳에서 10명이 살고 있었다. 지은 지 100년이 넘은 데다 별도의 관리자도 없어 관리 상태가 엉망이었다. 집 천장은 온통 전선으로 얽혀 있었고 장판과 벽지는 너덜거렸다. 변기에는 변기 커버가 없었다. 그 대신 그 옆에는 쇼핑백 5개가 걸려 있었는데 집마다 각자의 변기 커버와 휴지가 들어 있었다. 샤워실은 집마다 암묵적으로 합의된 시간에 이용한다고 한다.

이들에게 사생활이란 찾기 힘들다. 이 코무날에 사는 한 대학생은 “신혼부부가 왜 부부싸움을 하는지, 누가 몇 시에 들어오는지, 무슨 통화를 하는지도 다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늘 분쟁의 연속이다. 얼마 전 아이를 가진 집은 밤마다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는 이웃집 스킨헤드 청년과 다툼이 있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이주민은 집마다 차례대로 하기로 한 변기, 샤워실, 부엌, 복도 청소를 하는 사람만 계속한다며 늘 불만이다. 과거 스탈린 시절 ‘인민의 적’ 색출 작업 때는 코무날의 이웃끼리 서로 감시하고 신고하는 일도 많았다. 지금도 러시아인들은 물론이고 외국인도 꼭 지참해야 하는 거주자 등록증은 1930년대 강제 이주 이후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면서 생겼던 사회주의의 산물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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