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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소련 시절엔 빵 사기 위해… 지금은 아이폰 매장 앞에 ‘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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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소련 시절엔 빵 사기 위해… 지금은 아이폰 매장 앞에 ‘긴줄’

동정민특파원 입력 2017-11-14 03:00수정 2017-11-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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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100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가다]<中> 돈의 맛에 익숙해진 러시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키롭스키 공장 앞에 붙어 있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 대형 포스터. 100년 전 노동 착취에 항거해 20만 명 가까운 노동자가 거리로 뛰어나왔던 그 공장이지만 3일 현장에서 만난 공장 노동자들은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지금 생활에 더 만족한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동정민 특파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카잔성당 근처에서 마주 보고 있는 스타벅스 커피숍 두 곳은 아이폰과 맥북을 쓰는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근로자의 평균 월급은 4만5000루블(90만 원) 수준으로 넉넉한 편이 아니지만 젊은이들은 한 달 월급을 모아 아이폰을 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한 대학생은 기자에게 가게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사진 두 장을 보여줬다. 한 사진은 1980년 빵을 사기 위해, 또 다른 사진은 2017년 아이폰을 사기 위해 각각 줄을 서 있는 모습이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된 지 26년이 지나면서 러시아인들은 ‘돈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심 넵스키 대로 옆 볼샤야 코뉴셴나야 거리는 원래 귀족들의 마찻길이었지만 현재는 에르메스, 샤넬, 구치 등 명품 숍이 즐비한 거리로 바뀌었다.

소련 시대를 경험한 70대들은 주는 대로 같은 것을 나눠 가졌던 사회주의에 대한 향수와 돈 낸 만큼 남과 다른 ‘내 것’을 가질 수 있는 자본주의의 매력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지만 점차 후자 쪽으로 마음이 쏠리고 있었다. 한 70세 여성은 기자에게 “해외여행도 마음대로 가고 대형마트에서 다양한 물건도 보면서 노인들이 40만 원 정도의 연금만 갖고는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며 “많은 노인들이 내 것을 사고 싶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러시아인들은 1990년대 초 자본주의로 넘어가면서 겪은 큰 혼란이 아픔으로 남아 있다. 구소련 붕괴 직후인 1992년 연평균 인플레이션은 1490%까지 치솟았다. 무상이었던 주택, 수도, 가스 등은 모두 쓴 만큼 내게 되었고 이제 남은 무상은 의료 정도다.

무상 의료의 질은 형편없다. 각종 의료 기계는 재투자를 하지 않아 낡았고 대기자가 많아 수술은 1, 2년 기다려야 한다. 러시아 남자들의 평균 수명은 66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7.9세보다 10세 이상 적다. 과한 음주 탓도 있지만 질 낮은 의료 서비스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부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일반 병원을 찾지 않고 고급 사립병원을 찾거나 독일로 의료 원정을 떠난다. 한 교민은 “진찰 한 번 받는 데 6만 원 정도 내는 메뎀이라는 병원을 주로 가는데 시설도 최신식이고 곧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사회주의 때보다 피부로 느끼는 빈부 격차는 커졌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이후 볼셰비키 정부는 이듬해 8월 부동산 개인 소유 폐지법을 발동해 모든 부동산을 국가가 소유해 국민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코무날이라고 불리는 공동주택에 방 한 채씩을 가지고 살았다. 현재 이 코무날은 방 한 칸에 5000만 원 정도에 매매되고 있다. 반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자 지역 집 한 채 가격은 20억 원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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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경제학과 라자노프 빅토르 티모페예비치 교수는 “소련 때 빈부격차의 간극이 7배라면 지금은 30배 정도로 커졌다”며 “갑작스러운 체제 전환과 정치개혁의 수준이 따라가지 못해 구소련 붕괴 이후 경제가 힘들었고 이는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러시아혁명의 중요 장소 중 하나인 푸틸로프 공장은 1917년 당시 노동자 수만 20만9000명에 달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최대 규모의 기계 공장이었다. 1905년 이 공장 노동자가 해고되면서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섰고 이른바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유혈 진압 사태를 겪으며 사회주의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 됐다. 이들은 1917년 2월과 10월 혁명 때도 시위를 주도했다.

100년이 지나 3일 다시 찾은 푸틸로프 공장은 키롭스키 공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혁명 이후 국가 소유가 된 이 공장은 1934년 공산당 간부였던 키롭스키의 이름을 땄다. 1992년까지 국가 소유이던 이 공장은 지금은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키롭스키 박물관 안내원은 “계속된 전쟁으로 군수시설이 있던 이곳의 일이 많아져 노동 착취 문제가 나왔고 식량이 부족해 배고픔이 커진 게 키롭스키 공장 노동자들이 당시 거리로 나온 가장 큰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혁명 이후 이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이 오히려 노동시간 8시간을 지키고 추가 수당도 주고 노동 환경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키롭스키 공장 앞에는 100주년 기념 대형 포스터가 붙어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10여 명과 접촉했으나 모두 소련 시대보다 조금씩 생활이 나아지고 있는 현재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러시아 혁명#상트페테르부르크#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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