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원 개혁위 민간위원들, 인가 없이 비밀자료 들여다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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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관의 적폐청산과 조직쇄신 작업을 맡은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의 민간위원들이 2급 비밀취급 인가를 받기 전 16차례 회의를 열고, 3차례 국정원 내부 자료를 열람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와 법조계에서는 “비밀취급 인가를 받기 전에 국정원 자료를 열람하도록 한 건 위법 소지가 크며, 그 자료를 근거로 한 수사 자료도 법정에서 증거능력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국정원 개혁위 출범 두 달 뒤 비밀취급 인가 취득

25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국정원 개혁위 활동 사항 관련 자료’에 따르면 개혁위 13명 중 정해구 위원장 등 민간위원 8명은 8월 29일 2급 비밀취급 인가를 받았다. 6월 19일 출범한 개혁위는 비밀취급 인가를 받기 전인 8월 24일까지 3차례에 걸쳐 국정원 업무현황과 국정원 댓글 사건 관련 ‘사이버외곽팀’ 운영사실 확인 결과, 세계일보 보도 문건 관련 의혹 조사 결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녹취록 내용 등을 열람했다. 같은 기간 매주 1, 2번씩 국정원에서 16차례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비밀로 분류되어 있는 국정원의 조직·정원과 관련한 규정 개정도 논의했다.

국정원은 민간 위원이 열람한 세부 내용에 대해선 공개를 거부했다. 국정원 측은 “국정원의 조직·인원은 물론이고 보안을 요구하는 정보활동 사항 등이 포함돼 있어 국정원법에 따라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밀취급 인가를 받기 전 민간 위원들이 열람한 자료에 비밀 자료가 포함돼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위원들이 열람한 자료는 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이 요청하거나 국정원이 위원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국정원 보안업무규정에 따르면 비밀은 해당 등급의 비밀취급 인가를 받은 사람 중 그 비밀과 업무상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만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 측은 “보안규정 24조 2항에 근거해 비밀취급 미인가자도 국정원장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안조치를 하면 열람이 가능하다”며 “보안각서 징구 등 보안조치 아래 자료를 열람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사전에 자료를 검토, 점검하고 위원회 활동에 필요하다고 판단해 국정원 안에서 열람했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 국정원 “규정 지켰다” vs 법조계 “위법 소지”

반면 법조계와 전직 국정원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불법으로 볼 여지가 크다”는 해석이 다수다. 공안부 고위 검사 출신 A 변호사는 “보안업무규정상 (비밀을 볼 수 있는) 비밀취급 미인가자에 ‘민간인’을 넣어 해석한 경우는 국정원과 검찰 등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다”며 “민간인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국정원 자료를 열람했다면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법원장 출신의 B 변호사는 “국정원법은 국정원의 조직 및 직무범위 등을 규율하기 위해 만든 법이고, 그 법에 근거한 보안업무규정도 상위법 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면서 “비밀취급 미인가자에 (국정원 직원이 아닌) 민간인이 포함된다고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고, 넓게 보더라도 유관기관 소속 공무원에 한해 국정원장의 허락을 얻었을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위법한 방식으로 얻은 증거는 추후 재판 과정에서 증거능력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비밀취급 인가 과정을 명확히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부장검사 출신 C 변호사는 “비밀취급 인가를 받기 전 국정원 자료를 열람하거나 취급한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국정원장의 허락을 받은 것처럼 입을 맞췄을 수 있다”며 “추후 조사를 통해 비밀취급 인가 신청 시기와 과정 등도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도 “열람도 비밀취급이기 때문에 비밀취급 인가가 있어야 하는 게 상식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는 “형식적으로 인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직접 관계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적폐청산이란 직무를 위해 열람했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한편 적폐청산 작업을 진행 중인 국방부는 국정원과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는 위원장인 강지원 변호사를 비롯해 외부 위원 10명을 포함해 군 적폐청산위원회를 구성했다. 군 적폐청산위는 사이버사령부 댓글, 기무사 군인·민간인 사찰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그러나 외부 위원에게 비밀취급 인가를 허가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대외비와 비밀사항은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배석준 기자
#국정원#개혁위#비밀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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