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수준’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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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등한 면도 있지만 우열과 차이도 세상에는 존재해
진정한 개혁은 단순 ‘개량’ 아닌 높낮이를 높이는 것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세계를 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그 가운데 좌나 우로 대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동과 서로 보는 것도 이와 유사하겠다. 높낮이가 없이 방향만 따지는 평면적 방식이다. 이와 달리 상과 하를 가지고 볼 수도 있다. 높낮이를 따지는 방식이다. 평면적이라기보다는 입체적이다.

가끔 이런 질문을 해본다. “세상에는 여러 칩(chip)들이 있습니다. 반도체 칩이 있고 감자 칩이 있다고 합시다. 어느 것을 더 높게 평가해야 합니까?” 많은 대답들은 이렇다. “반도체 칩에는 반도체 칩의 역할이 있고, 감자 칩에는 감자 칩의 역할이 있습니다. 각자 고유한 역할을 따로 갖는다는 점에서 높낮이를 따질 수 없습니다.”

매우 세련된 대답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반도체 칩이 감자 칩보다 높게 평가될 수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생산할 때 쓰이는 지식과 이론의 높낮이 때문이다. 반도체 칩을 만들 때 적용되는 지식과 이론이 감자 칩을 만들 때 쓰이는 지식과 이론보다 높다. 지식이나 이론은 인간이 세계를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고효율의 장치다. 높은 이론은 높은 곳에서 통제하고 낮은 이론은 낮은 곳에서 통제한다.

더하기 빼기와 3차방정식이 있다고 하자. 이 둘 사이에도 분명히 높낮이가 있다. 둘 사이에서 더하기 빼기는 낮고 3차방정식은 높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은 큰 통제력을 발휘하고, 낮은 곳에 있는 것은 작은 통제력을 발휘한다. 3차방정식은 더하기 빼기보다 더 큰 통제력을 행사한다. 내적으로 보면 통제력이고 외적으로 보면 영향력이다. 반도체 칩이 감자 칩보다 더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더 높은 수준의 지식과 이론을 적용함으로써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질문을 내용만 바꿔서 해보기도 한다. “문명에는 높은 문명과 낮은 문명의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혹은 앞선 문명과 뒤따라가는 문명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칩에 관한 질문을 할 때보다 대답이 더 빠르고 단호하다. “문명 사이에는 높고 낮고 혹은 앞서고 뒤서고의 차이가 없습니다. 각자의 문명은 각기 다른 전통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모두 동등합니다.”

꼭 그렇기만 한가? 문명을 구성하는 것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것이 물건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산해서 사용하는 물건 가운데 우리부터 만들기 시작한 것이 있는지 보자. 한글 이외에는 찾기가 매우 어렵다. 제도를 보자. 우리가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제도가 있는가. 사상이나 생각의 방식도 한번 보자. 우리가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거의 없다. 물건이나 제도나 철학은 문명의 총체다. 이것들을 먼저 만들면, 세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으므로 주도권을 갖게 된다. 흔히 말하는 일류(一流)의 높이다. 흐름의 주도권을 잡으면 선진국이고 전략국가다. 그러지 못하면, 후진국이고 전술국가다. 선진국은 앞서고, 후진국은 뒤따라간다. 높은 문명은 위에서 누르고, 낮은 문명은 아래서 눌린다.

높낮이로 봤을 때,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를 통제한다. 지식과 이론은 보이는 세계가 아니다. 관념 세계다. 감각 경험을 벗어난, 읽히는 세계다. 감각되고 경험되는 세계를 현상 세계라 한다. 따라서 이론적인 관념의 영역은 현상적이고 감각적인 현상의 영역에 ‘관한’ 것으로서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통제력이나 영향력은 더 강하다. 이렇게 본다면 시선의 높이가 만져지고 보이는 세계에 있는 것보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세계에 있는 것이 통제력이라는 의미에서는 더 유리하다.

보이고 만져지는 감각 경험 세계에서 쾌락을 만드는 일이 예능이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높이에서 쾌락을 다루는 일을 예술이라고 한다. 무엇을 즐기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이 어느 높이에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것이 삶의 질과 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예능에 빠져 있다. 심지어는 정치와 지식도 예능에 잡혀 있다. 모두 예능을 찾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예능의 높이에 있다.

세계는 좌우만 따지면 높이를 갖지 못하고, 높낮이만 따지면 넓이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혁명, 진보, 개혁 등등은 같은 높이에서 처지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처지와 입장만 바꾸는 것은 ‘개량’일 뿐이다. 이제는 높낮이를 살펴야 할 때가 아닐까?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원장
#높낮이#높은 이론#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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