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도 해외공장 지을 것”… 현대車 前노조위원장의 쓴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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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씨, 반성의 견학보고서 공개… “해외선 노조가 사사건건 반대 안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국내공장이 해외공장에 비해 더 낫다고 내세울 게 있나. 내가 경영진이라도 해외공장을 지을 것 같다.”

현대차 노조 창립을 주도하고 2대 노조위원장까지 지낸 이상범 현대차 울산공장 문화감성교육팀 기술주임(60·사진)이 18일 동아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현대차 노조를 향해 작심하고 쓴소리를 던졌다. 올해 말 정년퇴직을 앞둔 그는 최근 현대차 노조게시판과 자신의 블로그(blog.daum.net/jilgoji)에 전·현직 노조위원장들이 2015년 해외 자동차 공장을 방문하면서 느꼈던 ‘반성의 견학 보고서’를 뒤늦게 공개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지금의 현대차 국내 공장은 경쟁 업체는 물론이고 현대차 해외공장 근로자들의 생산성에도 한참 못 미침에도 노조가 고임금에만 골몰하며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 2대 노조위원장(1989~1990년)을 지낸 그는 임금·단체협상 결렬로 21일간의 파업을 주도했고 현대중공업 노조와의 연대투쟁도 처음 실행한 대표적 활동가다. 울산시의원(1998~2000년)과 울산 북구청장(2002~2006년·당시 민주노동당 소속)도 지냈다.


2015년 당시 그는 윤성근(4대 노조위원장) 이상욱(9대 〃) 이경훈(당시 위원장) 등 전·현직 노조위원장 5명과 중국 러시아 독일 등의 해외자동차 공장을 둘러봤다.

현대차 러시아공장이 양산에 들어간 지 4년8개월 만에 100만 대 누적생산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것을 직접 본 그는 생산성과 관리 지표를 나타내는 숫자가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다시 봤다고 밝혔다. 그는 “놀라운 생산성은 생산라인 속도와 인력 배치가 유연하기 때문이었다. 신차 개발과 설비까지 다 마련해 놓고도 노조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제때 신차를 생산하지 못하는 국내공장 현실과 비교됐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노조가 거부하는 직무 난이도에 따른 차등임금 등을 포함한 인사평가 제도를 산별노조의 모범으로 꼽히는 독일의 금속노조가 노사 합의로 시행하고 있던 점도 충격적이었다고도 언급했다. 독일 금속노조는 생산직에 직무별 난이도, 개인 숙련도 등으로 17개 등급을 부여하고 임금을 차등화하는 인사평가 제도를 운영 중이다. 현대차는 동료조차 함께 일하기 꺼리는 저성과자들에게도 인사와 급여에서 어떤 차등도 둘 수 없다.

그는 국내공장과 해외공장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요약해 “노조가 경영권 행사에 사사건건 개입하려 하거나 반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전 열악한 처우와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를 설립했지만 지금은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현대차 노조가 변질됐다고도 지적했다. 연례행사와 같은 파업으로 고임금과 고복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에게는 불신을 주고, 동반자인 협력업체들에게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는 “이제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우리끼리의 잔치’는 유지해서도 안 되고 유지할 수도 없게 됐다”고 말했다.

블로그 글에서 그는 “우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너그덜 망해봐야 정신차린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악담 한다고 괘씸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빨리 정신 차리라는 충고로 고맙게 받아들여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2년이 지나 공개한 배경에 대해 “당시 같이 갔던 분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전·현직 노조위원장들이 사측에 설득 당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부담스러워 보고서를 만들어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중한 자료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개인자격으로 올린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상당수의 현대차 노조원들도 개인적으로는 노조의 문제점을 공감하지만 집단화되면 문제의식을 공감하지 않는 분위기로 바뀐다”며 “이제는 노조원들이 본인을 위해서라도 지속가능한 직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배 노조위원장이 지금의 노조와 노조원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자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 것이다.

최근 새 지도부를 선출한 현대차 노조는 한국자동차산업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통상임금 쟁취’를 새 목표로 내세우며 24일부터 임·단협을 재개한다고 사측에 통보했다. 기아차가 통상임금에 승소한 것을 명분 삼아 현대차 노조는 이미 2심까지 패소한 통상임금을 노사협상으로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현대자동차#이상범#공장#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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