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 코드’속 비밀… “음양오행 맞춰 완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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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명문
최영성 교수 새로 판독해 분석

미술 작품에 숨겨진 암호를 추적하는 소설 ‘다빈치 코드’처럼 국보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겉에 쓰인 명문(銘文)에 숨겨진 비밀을 밝힌 연구가 나와 주목된다. 한국 고대 사상사 연구자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12일 신라문화제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인 ‘신라성덕대왕신종의 명문 신탐(新探)’에서 명문을 새로 판독, 분석했다.

○ 코드1―종의 사주팔자(四柱八字)

“유사(有司·실무부서)에서 일을 준비하고 기술자들은 밑그림을 그렸다(畵模). 때는 신해년(771년) 12월이었다.”

명문의 기존 번역 중 일부다. ‘종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표현도 어색하거니와 바로 뒤 “이때 해와 달이 서로 빛을 빌고 음과 양이 기운을 조절하였다”는 구절로 특별히 강조할 만한 일 같지도 않다.

실마리는 ‘그릴 화(畵)’자에 있다. 최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기존 번역은 오역이다. 당시 ‘畵’자는 오늘날 ‘쪼갤 획(劃)’과 같은 뜻이 있었다. 바른 해석은 “장인들이 거푸집(模)을 떼어내니(畵)”가 된다.

종이 완공될 때 “음과 양이 기운을 조절하였다(陰陽調氣)”는 것도 의례적 수식이 아니라 숨겨진 비밀이 있다. 종의 제작일은 음력으로 771년 12월 14일. 논문에 따르면 연(신해·辛亥)과 월(신축·辛丑)의 간지(干支)가 모두 음에 속하고, 제작일(병인·丙寅)의 간지는 반대로 양에 속한다. 백제 칠지도 등의 사례에 비춰 보면 제작 시간의 간지 역시 양에 속하는 갑오(甲午)로 추정된다. 최 교수는 “간지 여덟 글자의 음과 양이 4 대 4로 양분됐고, 오행도 고르게 배열됐다”며 “완공 날짜를 음양오행에 맞춰 미리 정해 놓고 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 코드2―풍류 사상
 
‘성스러운 덕이 크다’고 번역돼 온 명문의 ‘원원성덕(元元聖德)’도 최 교수는 새로 해석했다. 원래 ‘현현(玄玄)성덕’이었으나, 당나라 현종(玄宗)의 시호 글자를 피해 ‘玄’을 ‘元’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현현은 노자에 나오는 ‘현지우현(玄之又玄)’의 줄임말이다. 또 뒤 구절의 ‘묘(妙)하고 묘(妙)하도다 맑은 교화여!’와 짝을 이루며 성덕왕의 덕을 ‘현묘(玄妙)’로 묘사한 것이 된다.

최 교수는 “최치원은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라고 해 신라에 현풍(玄風)이 있었음을 증언했다”며 “이 구절은 성덕왕(재위 702∼737년)의 통치 원리가 우리 고유의 풍류도(風流道)와 연결됐다는 걸 시사한다”고 밝혔다.

○ 코드3―숨은 이념 갈등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는 이 종은 아들 경덕왕(재위 742~765년)이 시도했으나 종을 주조하지는 못했다. 결국 손자인 혜공왕(재위 765∼780년)이 완성했다. 명문은 경덕왕의 유교적 정치이념 등 한화(漢化) 정책에 대해 “속(俗)을 다스림에 고(古)를 따랐으니 풍조를 바꿈에 무슨 어긋남이 있으랴(治俗仍古, 移風易俗)”라고 칭송했다.

최 교수는 “명문은 또 한화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린 혜공왕 대를 ‘보배로운 상서(祥瑞)가 자주 나타나고, 신령한 영험(靈驗)이 늘 생겼네’라며 우회적으로 옹호했다”며 “이는 개혁파와 보수파의 갈등이 적지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성덕대왕신종#최영성 교수#성덕왕#에밀레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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