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1년 더 뛰어 삼성이 확 달라진다면 은퇴 미뤘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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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준비하는 ‘국민 타자 이승엽’

푸른색 삼성 유니폼을 입은 ‘국민타자’ 이승엽을 야구장에서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난 이승엽은 “은퇴 후 야구 선수가 아닌 일반인으로 살아갈 일이 두렵기도 하지만 팬들의 응원에 부끄럽지 않게 ‘단디’(단단히의 경상도 방언) 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내달 3일 넥센전에서 23년(일본 프로야구 8년 포함)간의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대구=이헌재 기자
푸른색 삼성 유니폼을 입은 ‘국민타자’ 이승엽을 야구장에서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난 이승엽은 “은퇴 후 야구 선수가 아닌 일반인으로 살아갈 일이 두렵기도 하지만 팬들의 응원에 부끄럽지 않게 ‘단디’(단단히의 경상도 방언) 잘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내달 3일 넥센전에서 23년(일본 프로야구 8년 포함)간의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대구=이헌재 기자
“맑고 푸르지만 어쩐지 허전한 게 꼭 제 마음 같네요.”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던 이승엽(41·삼성)은 쓸쓸히 미소 지었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그에게 남은 경기는 단 4경기. 10월 3일 넥센과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나면 더는 푸른색 삼성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일본에서 뛴 8년을 포함해 23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국민타자’ 이승엽을 지난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났다. 오후 3시밖에 안 됐지만 그는 이미 훈련을 마친 후였다.

―일찍 야구장에 나온 것 같다

“낮 12시에 야구장으로 출근했다. 여전히 야구장이 제일 편하다(웃음).”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 느낌이다.

“마지막, 마지막 하다 보니 이제 내 마음이 정말 지친 것 같다. 떠나기 싫으면서도 동시에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새로 리셋(Reset)한 뒤 제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은퇴 후 진로를 생각해둔 게 있나.

“1년 전부터 뭘 할까 생각하긴 했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진 못했다. 어떤 일을 하든 나를 아껴준 사람들에게 박수와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일단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

올 시즌 25일 현재 그는 타율 0.277에 22홈런, 84타점을 기록 중이다. 31홈런을 기록 중인 러프에 이어 팀 내 홈런 2위이자, 타점은 3위다.

―여전히 은퇴를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올해 성적도 괜찮은데….

“그동안 삼성 선수로 뛰면서 좋은 일이 너무 많았다. 라이온즈를 빼고는 내 인생을 얘기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내가 떠나야 팀이 새로 태어날 수 있다. 나 때문에 못 뛰는 선수들이 있다. 스포트라이트도 내가 아닌 다른 선수들이 받아야 한다. 아쉽지만 떠나는 게 사랑하는 삼성에 대한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한다.”

―1년 더 뛰면서 팀에 힘이 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나.

“냉정하게 볼 때 내가 1년을 더 뛴다고 해서 우리 팀이 급격히 좋아지진 않는다. 손톱만큼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은퇴를 미뤘을 것이다. 하지만 팀의 미래를 위해 지금 떠나는 게 맞다. 젊은 선수들이 침체기에 빠진 팀을 잘 살려 놓기를 밖에서 응원할 것이다.”

―사상 첫 ‘은퇴 투어’를 통해 팬들과 작별을 나누고 있다.

“‘야구 선수가 되길 정말 잘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행복하게 떠날 수 있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 기립 박수를 보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게 죄송할 뿐이다.”

―인성과 실력을 고루 갖춘 선수로 큰 사랑을 받았다.

“스스로를 볼 때 언론에서 보이는 것처럼 100%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인사와 예절 등 기본을 지키려 노력하긴 했다. 일본 프로야구, 특히 요미우리에서 뛰면서 많은 걸 배웠다. 어린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일본에서 막판에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일본에서 실패를 맛본 게 오히려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일본에 가기 전까지는 상당히 게을렀다. 하지만 일본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면서 자연스럽게 부지런함이 몸에 배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일본에서 생겼다. 그런 식으로 자기관리를 하다 보니 지금 이 나이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장 며칠 후 일반인으로 돌아가면 상당히 어색할 것 같다.

“그동안 못했던 아빠 노릇, 남편 노릇에 충실할 것이다. 취미로 즐기던 골프도 마음껏 쳐볼 생각이다. 그래도 야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당분간 많이 힘들 것 같다. 여전히 야구장에 나오는 게 이렇게 즐거우니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해 달라.

“먼저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경기 중 선수들이 웃고 즐기는 것 같지만 사실 그라운드는 치열한 전쟁터다. 무조건 결과를 내야 하는 싸움터다. 몸과 마음이 지쳐 팬들의 사인이나 사진 촬영 요청을 잘 못 들어드린 경우가 있었다. 은퇴 후에는 그동안 못해 드렸던 팬 서비스를 기꺼이 할 생각이다. 그동안 주신 사랑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대구=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승엽#이승엽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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