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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731부대원의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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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731부대원의 참회

서영아 도쿄특파원 입력 2017-08-22 03:00수정 2017-08-2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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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특파원
일본의 8월은 전쟁에 대한 반성과 회오, 때로는 향수까지 묻어나는 달이다. 특히 전후 72년이 지난 올해는 ‘초초고령’으로 접어든 전쟁 체험자들의 ‘전쟁은 안 된다’는 호소가 더욱 간절하게 들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13일 NHK가 방영한 ‘731부대의 진실’이 반향을 불렀다. 1949년 옛 소련에서 열린 ‘하바롭스크 군사재판’의 음성 데이터 22시간 분량을 입수해 공개했다. 재판정에 선 731부대 주요 관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이 재판에 대해서는 그간 소련이 발표한 문서자료만 있어 우익을 중심으로 ‘날조설’이 끊이지 않던 터였다.

“1943년 말, 설탕물을 만들어 티푸스균을 넣은 뒤 중국인 만주인 약 50명에게 강제로 마시게 했다. 그 실험으로 죽은 사람은 12명에서 13명이었다고 기억한다.”(731부대 위생병 고토 요시오)

“페스트 벼룩 실험을 하는 건물이 있다. 4, 5명의 죄수를 안에 넣고 페스트 벼룩을 뿌렸다. 실험에 쓰인 죄수는 모두 감염됐다.”(731부대 군의·軍醫 니시 도시히데)


일일이 옮기기 어렵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담담했다. 각종 증언과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내용도 적지 않지만 당사자의 육성이 주는 ‘진정성’이 전달돼 왔다.

731부대는 1936년 8월 ‘관동군 방역급수부 본부’라는 이름으로 발족한 육군 비밀부대다. 만주 하얼빈을 중심으로 중국인 러시아인 등 자신들이 사형수로 분류한 ‘마루타’를 사용해 인체 실험을 했다.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증거는 철저히 인멸됐고 피험자인 죄수들은 살해된 뒤 소각됐다. 10년간 3000여 명이 인체 실험이란 명목으로 희생됐다.

마루타 중에는 젖먹이가 딸린 여성도 있었고, 한번 부대에 발을 들인 죄수는 아무도 살아서 나가지 못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생물무기 실험을 위해 마을과 우물에 세균을 뿌렸으며 일본 정부가 1940년 한 해에만 현재 금액으로 약 3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가라사와 도미오 군의는 “다시 태어난다면, 혹은 여생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악행을 바로잡고 인류를 위해 바치고 싶다”는 최후진술을 남겼다. 강제노동 20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1956년 형 집행정지로 귀국을 앞둔 시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방송에 중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중국 외교부 보도국장은 15일 회견에서 “역사의 진상을 폭로하는 통찰력 있는 일본인들의 용기를 칭찬한다”고 논평했다.

이들과 달리 발 빠르게 일본에 귀국한 731부대 주범들이 전범재판에 회부되는 일은 없었다. 미국이 관련 데이터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면죄해 줬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판단은 어떨까. 2002년 8월 도쿄지방재판소는 일본 정부에 배상을 요구한 중국인 원고들의 소송을 기각하면서도 세균전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사법사상 731부대의 존재를 처음 인정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도 731부대에 대해 “관련 자료가 일본 정부 내에 없다”며 사실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열쇠는 미군이 넘겨받은 731부대 관련 문서들에 있다. 1986년 미국 하원 공청회에서 미군 기록관리부장은 “1950년대 후반에 자료를 일본에 반환했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자료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중국 정부는 1972년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대일청구권을 포기했지만 민간의 배상 요구는 막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1991년 가이후 도시키 당시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민간 피해자들은 연명으로 보상액 1800억 달러를 요구했다. 일본 정부의 “자료가 없다”는 변명은 언제까지 통할까. 역사를 직시하는 자만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서영아 도쿄특파원 sya@donga.com


#731부대#하바롭스크 군사재판#마루타#인체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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