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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홍수영]공산주의보다 무서운 게 관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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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홍수영]공산주의보다 무서운 게 관료주의?

홍수영 정치부 기자 입력 2017-08-17 03:00수정 2017-08-1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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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영 정치부 기자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인 A의 말에 한때 현혹됐다. 2015년 A는 만날 때마다 통일 시대에 대비한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그가 추진하는 B사업이 실현되면 통일이 손에 잡힐 것 같을 정도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은 대박’ 발언이 약효를 발휘하던 때이긴 했다. 그렇더라도 그는 통일에 유독 강한 신념을 가진 인물로 보였다. 이듬해 남북관계가 얼어붙고 여당마저 20대 총선에 참패하며 B사업은 동력을 잃었다. A가 이를 안타까워할 듯해 전화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일에까지 신경 쓸 수 있겠느냐”며 심드렁했다.


공무원의 레토릭(수사)을 믿은 게 순진했을까. 어쩌면 이는 그들이 사는 법에 대한 흔한 일화일지 모르겠다. 고위 공무원에겐 특히 그렇다. 정권의 입맛에 맞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게 수습 사무관 시절부터 터득한 지혜일 테다. 5년마다 나라를 새로 세우듯 국정철학이 확확 바뀌다 보니 사실 업무 능력만으로는 모자란다. 정권의 코드를 민첩하게 읽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과 데이터를 착착 생성해내는 정무 감각이 필수다. 공직자들은 이런 자신의 처지를 김수영의 시 ‘풀’에 빗대 ‘바람(권력)보다 더 빨리 눕는다’고 자조한다.

정무 감각이 탁월한 공무원조차도 요즘은 현기증을 느낄 것 같다. 17일 출범 100일째를 맞는 문재인 정부는 정권교체란 무엇인지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정책 급회전도 본격화됐다. 공약을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집권 세력이 국정운영 기조를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방향 선회는 그 자체가 민의(民意)의 실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무원의 자기 부정을 종종 목격한다. 자신이 전 정부에서 실무 설계한 정책을 놓고 “그때 그 정책 때문”이라고 몰아세우거나 불과 몇 달 전 정부 통계를 ‘마사지’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의 야심작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에서도 그랬다. 2022년까지 필요한 총 30조6000억 원은 건강보험 적립금을 활용하고 국고 지원을 늘리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앞서 3월에는 적립금이 2023년경 소진된다며 ‘공포 마케팅’하던 정부였다. 건보료 인상률을 전·현 정권 입맛대로 전제한 뒤 ‘고무줄 추계’를 하면서 생긴 일이다.

정권 초기에는 집권 세력이 착각할 수도 있다. 각종 부처에서 마술 램프처럼 뚝딱 논리와 통계를 만들어내니 공직사회를 장악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기 쉬운 게 있다. 1980년대식 ‘반공 개그’로 말하자면 공산주의보다 더 무서운 게 관료주의다. 한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집권 1년 차에는 부처에 보고서를 가져오라면 금세 만들어 국·실장이 직접 배달 온다. 그러나 3년 차만 지나도 숫자만 난무하고 실제 되는 일은 없는 맹탕 보고서를 전자문서로 쏘는 식”이라고 말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공무원은 영원하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료 공화국’의 덫에 걸리지 않을 것인가.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만기친람(萬機親覽·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너무 나서면 부처 공무원들은 보고서 쓰기에 바쁘고, 눈 밖에 날까 지시를 넘어서는 일을 하지 않는다. 공무원의 ‘영혼’은 결국 집권 세력의 몫이다.

홍수영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



#통일#공산주의#관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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