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덕]일자리, 허들부터 걷어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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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부 차장
김창덕 산업부 차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사흘 전 대형 유통업체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대형마트에 파견된 판촉사원 인건비를 마트와 납품업체가 공동 부담토록 했다. 판매량이 늘어나면 둘 다 이득을 얻으니 비용도 함께 내라는 논리다.

대형마트들은 불만이 가득하다. 납품업체들이 자신들 물건을 더 팔기 위해 인력을 투입하는데 마트가 왜 월급을 주냐는 주장이다. A식품업체가 판촉사원을 배치시켜 A사 물건이 잘 팔리면 경쟁사인 B식품업체 판매량은 줄어든다.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제로섬 게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식행사를 포함한 다양한 이벤트들이 고객을 마트로 유인하는 효과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형마트 주장에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인건비 부담이 커진 대형마트가 납품업체들의 판촉사원 파견을 막을 때 발생한다. 업계 1위인 이마트의 전국 150개 매장에서는 평균 70명 정도의 판촉사원이 일하고 있다. 이들 중 절반만 줄어도 약 5000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납품업체들이 이들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기도 어렵다. 유통업계의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공정위의 철퇴가 엉뚱하게 판촉사원들을 향하게 된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구호에 역행해 엉뚱한 결과를 낳는 정책은 또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다. 문 대통령은 5월 12일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천명했다.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절대 선(善)’으로 치켜세워지고 있다. 지난달 대통령은 대기업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하면서 중견기업인 오뚜기 회장을 같이 불렀다. ‘갓뚜기’처럼 정규직 비율을 높이라는 무언의, 그렇지만 강력한 메시지였다. 기업들은 즉각 응답했다. 오뚜기 초청 사실이 알려진 후, 그리고 간담회가 열리기 전 CJ와 두산은 각각 3008명, 45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신규 채용도 함께 늘리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표정이 어두워진 건 취업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이다. 하필 공채 시즌을 앞두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같은 이슈들을 쏟아내느냐는 볼멘소리가 거세다.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부터 줄일 거라는 불안감에서다.

기업들은 태생적으로 이익을 좇는 집단이다. 경영에 도움이 된다면 누가 압박하지 않아도 정규직화든 임금 인상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원료의약품 위탁생산업체인 SK바이오텍 사례가 그렇다. 이 회사는 올해 초 협력업체 소속의 도급인력 123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지난해 7월부터 검토해 6개월 만에 실행에 옮겼다. 배경은 간단하다. 5월 세종 공장이 상업가동에 들어가면서 인력 수요가 늘었다. 또 회사가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숙련공들을 지켜내는 게 인건비를 아끼는 것보다 백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정부 눈치를 보며 결정한 일이 아니니 굳이 외부에다 생색을 낼 이유도 없었다.

노동 시장도 엄연한 시장이다. 정부가 비정규직을 줄이라고 기업들을 압박하면 당장 일자리 상황판의 숫자는 변할 수 있겠지만 보다 큰 것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인건비 상승을 못 견디겠다는 섬유업체들에 해외 이전 자제를 요청한 것은 난센스다. 최저임금을 너무 급격히 올리면서 기업이 떠날 명분을 준 건 다름 아닌 정부다. 기업들이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제대로 레이스를 펼치려면 정부는 트랙에 놓인 허들부터 걷어내야 한다. 지금처럼 기업을 압박하면서 허들을 높이는 정책으로는 원하는 목표점에 도달할 수 없다.
 
김창덕 산업부 차장 drake007@donga.com
#대형마트 인건비 부담#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문재인 정부 일자리 창출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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