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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만의 귀환…이것이 바로 ‘헐버트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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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만의 귀환…이것이 바로 ‘헐버트 거북선’

뉴시스입력 2017-08-11 14:35수정 2017-08-1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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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 거북선’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11일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1863~1949) 박사 68주기 추모식에서 소장자 전우홍씨가 공개했다.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이려고 1903년 헐버트가 한성전기 기술자들과 함께 제작한 길이 140㎝·폭 40㎝짜리 모형이다. 당시 전시는 불발됐다. 해양전시관을 필리핀이 독점계약했다는 이유로 세인트루이스박람회 측이 출품을 막은 탓이다.

헐버트는 1899년 6월 미국 월간 ‘하퍼스 매거진’에 ‘코리안 인벤션스’라는 제목으로 조선의 5대 발명품을 소개했다. 금속활자, 거북선, 현수교, 폭발탄을 조선이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고 알렸다. 한글의 우수성이 세계 제일이라며 역시 발명품에 포함시켰다. 이 글에서 헐버트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대항하려고 ‘아이언크래드(철갑선)’를 만들었으며 모양이 거북을 닮아 ‘거북선’이라고도 불린다고 썼다.



헐버트 거북선 모형(코리안 터틀 보트 모델 벤치 메이드)은 3층으로 돼있다. 열리는 창, 갑판으로 통하는 사다리, 마루판이 있다. 선수미의 미닫이 문과 고물에는 비둘기 꼬리(船尾虛欄)를 표현했다. 청동 대포는 나무수레(童車) 위에 놓여 있고 모든 창문은 개별적으로 작동되며 닻에는 쇠사슬이 달렸다. 왜군이 다가오면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용머리가 끄덕여져 사나운 용처럼 보이도록 했다.

미국의 경매사이트에서 2006년 헐버트 거북선을 낙찰 받은 해양유물수집가 전씨는 “1895년 조선 수군이 폐지기기 전 실존한 거북선 혹은 잔해들은 외국 선교사나 외국 배에 의해 사진이나 도면으로 남겨졌을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1871년 신미양요 때 거북선 몇 척을 만들라고 명했다는 기록도 헐버트 회고록에 있다. 이 모형선은 전문 제작자가 도면이나 사진을 보고 만들었을 것이다. 일반인이 상상으로는 만들 수 없을만큼 정교하다. 당시 한성전기 엔지니어팀은 미국에서 전차를 부품형태로 가져와 서울에서 조립하기도 했다. 이 거북선 모형은 헐버트의 구상으로 한성전기 엔지니어팀이 만들었다고 추측한다”고 밝혔다.

부산으로 들여온 지 10년만에 헐버트 거북선의 존재를 전하는 것은 “임진왜란·정유재란(1597)과 충무공전서(1795)의 거북선 두 가지에 국한해 거북선의 형태가 연구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아직 확실한 고증이 기초되지 않았고, 학자들이 주장하는 노와 현란(舷欄) 등 기존의 거북선 형태와 차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전씨는 해군 경비정장 출신으로 미국해군 해상수송사령부에서 일하고 있다.


한편 미국인인 헐버트는 1886년 대한제국 때 첫 서양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우리나라에 왔다. 1890년 세계사회지리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내고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 “문자사에서 한글보다 더 간단하게, 더 과학적으로 발명된 문자는 없다”고 확언했다. 고종의 헤이그 밀사 파견을 도왔고 미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다. 일제에 의해 쫓겨난 뒤 1909년 미국에서 집필한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 서문에 “나는 1800만 한국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싸웠으며 한국인들에 대한 사랑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적었다. 1949년 7월29일 광복절을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왔다가 8월4일 별세하기 직전 “웨스터민스터 사원보다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했다. 8월11일 최초의 외국인 사회장이 치러졌다. 이듬해 3월1일 건국공로훈장 태극장(독립장), 2014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아리랑’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도 헐버트다. 입으로만 전해지던 아리랑을 1896년 5선지에 악보로 처음 옮긴 주인공이다. 헐버트가 채록한 아리랑은 고종이 즐겼다는 아리랑,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삼은 바로 그 아리랑이다. 오랜 세월을 구비전승으로 내려오던 아리랑을 재생 가능한 보편적 기보전승으로 존재하게 한 최초의 기록이자 최고의 기록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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