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靑 간담회 앞둔 재계 ‘상생 펀드’ 발표… 이 불편한 느낌은 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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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디스플레이가 어제 1·2차 협력사 사이의 거래를 어음 대신 현금으로 할 수 있도록 2000억 원 규모의 ‘물품대금 지원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1차 협력사가 금융권 대출을 받아 2차 협력사에 물품대금을 지불하면 그 이자를 펀드에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전날 SK그룹도 기존 동반성장 펀드 규모를 4800억 원에서 6200억 원으로 1400억 원 늘리기로 했다. 17일 LG디스플레이가 협력업체 상생 펀드 600억 원 증액 계획을 발표하고, 사흘 뒤 현대·기아자동차가 2·3차 협력업체 지원을 위해 1500억 원을 쓰겠다고 밝힌 것까지 포함하면 불과 열흘 만에 4대 그룹이 모두 상생 펀드를 새로 만들거나 규모를 늘리겠다고 한 것이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비슷한 내용의 상생 계획을 잇달아 발표한 것은 사실상 정부 요청 때문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7일 대한상공회의소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4대 그룹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2·3차 협력업체 지원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아예 오늘과 내일 열리는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의 간담회 취지를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역할에 대해 대화하는 자리”라고 못 박았다. 이런 식이니 기업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동반 성장하겠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기업들이 청와대 간담회를 앞두고 ‘숙제하듯’ 상생 계획을 발표한 점은 석연치 않다. 과거 정권의 기업 팔 비틀기가 반복되는 인상이다. 재계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주요 기업들에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하나씩 떠맡도록 한 것과 뭐가 다르냐는 불만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5월에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를 청와대로 불러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 보고대회’를 연 적이 있다. ‘정부의 대기업 팔 비틀기’라는 비판이 나오자 노무현 대통령은 “사실이 아니다. (상생은) 기업 자율로 하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대기업 총수를 청와대로 부른 것이 과연 자율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만약 다시 그런 비판이 불거진다면 새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이명박 정부 때도 기업에 미소금융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도록 하는 등 역대 정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구태를 반복한다면 그야말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따로 없을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상생 펀드#김상조#청와대 기업인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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