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군대’ 간 걸그룹 연습생… ‘노오력 프레임’에 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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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 ‘아이돌학교’ 논란
軍 생활반 본뜬 ‘핑크빛 사물함’에 보컬-체력-댄스 단체훈련까지
튀는 출연자, 기합받듯 질책 쏟아져
“스타 쉽게 되나… 못버티면 나가라”… 군대식 조직문화에 순응 요구
“가학성 오디션프로 흥행 성공뒤… 출연자 고통 자극, 갈수록 노골화”

걸그룹 전문 육성기관을 콘셉트로 한 엠넷 ‘아이돌학교’의 한 장면. 출연자들은 군대 생활반을 본뜬 숙소에서 잠을 자고 단체문화에 순응할 것을 강요받는다. 시청자 투표 결과가 발표될 때 출연자들의 표정도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방송 화면 캡처
걸그룹 전문 육성기관을 콘셉트로 한 엠넷 ‘아이돌학교’의 한 장면. 출연자들은 군대 생활반을 본뜬 숙소에서 잠을 자고 단체문화에 순응할 것을 강요받는다. 시청자 투표 결과가 발표될 때 출연자들의 표정도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방송 화면 캡처
성(性) 상품화는 없다고 단언했지만 결국 출연자들은 소모품처럼 그려졌다.

13일 시작해 2회까지 방영을 마친 엠넷 ‘아이돌학교’ 이야기다. 걸그룹 전문 교육 기관을 콘셉트로 한 이 예능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말이 많았다. 어린 여성 출연자들에게 물을 뿌리고 ‘무대 위기 대처술’이라 포장하는 티저 영상은 소녀들의 성 상품화 논란을 일으켰다. 뚜껑을 열어 보니 걸그룹을 육성한다는 명목하에 조직 문화의 순응을 강요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군대 생활반을 본뜬 출연자 숙소. 가운데 복도를 두고 양옆으로 수십 명의 출연자들이 나란히 누워 잠을 자는 구조다. 다만 핑크빛으로 장식된 이불과 사물함이 등장한다. 누리꾼들은 이 장면을 캡처한 뒤 분홍색을 초록색으로만 반전시켰는데도 군대 생활반과 똑같아진 모습의 ‘짤방’을 퍼날랐다. ‘아이돌판 진짜사나이’ ‘핑크빛 군대’라는 반응도 나왔다.


외양만 군대를 닮은 게 아니다. 출연자를 교육하는 방법도 군대나 학교의 부정적 측면을 그대로 답습했다. 학교 수업처럼 진행되는 코너에서 출연자들은 보컬, 체력, 댄스 훈련을 받는다. 출연자들은 각자 다른 개성을 가졌지만 모두가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똑같은 춤을 춘다. 40명의 출연자가 V자 W자 X자 대형을 그리며 추는 군무는 마치 공산 국가의 매스게임처럼 보인다. 튀는 사람은 기합받듯 앞으로 불려나와 “한 사람이 튀려고 하면 팀이 망한다. 눈에 띄는 사람을 빼놓고 춤을 추는 게 좋겠냐”는 질책을 받는다. 출연자 대부분은 10대이고, 12세와 13세 초등학생도 있다.

압박과 긴장에 출연자들은 한 회에서 여러 차례 울음을 터뜨린다. 이런 힘든 상황을 합리화하는 것은 결국 ‘노오력’ 프레임이다. 이런 말도 나온다. “스타는 쉽게 되는 게 아니에요. 자신이 없는 사람은 지금 나가도 괜찮아요. 왜? 여러분의 자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전문가들은 프로듀스101 등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학성으로 흥행에 성공한 뒤 자극이 노골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출연자가 고통받고 망가지는 모습이 오히려 그를 주목하게 만들어 가치의 문제는 무시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슈퍼스타K나 K팝스타의 경우 심사위원들이 출연자를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장기적인 투자도 아까워 단기적 자극으로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대 문화 콘셉트의 기저에는 여성 혐오와 대상화가 깔려 있다는 의견도 있다. ‘아이돌로지’ 편집장이자 음악평론가인 미묘는 “군대의 부조리한 상황을 ‘너희도 당해보라’는 발상과 여성 아이돌을 장난감처럼 괴롭히고 싶은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핑크빛 군대#아이돌 학교#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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