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戰士 매케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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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보여준 역사적인 선거였다. 오바마 의원은 자신과 조국을 위해 위대한 것을 성취해냈다. 오늘 밤 미국인들은 지구상의 가장 위대한 민족이 됐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게 패한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승복 연설은 미 정치사의 감동적인 한 장면이다. ‘흑백 싸움’으로 불린 선거에서 매케인은 타운홀미팅에서 지지자들이 오바마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을 하면 “그는 품격 있는 미국 시민이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제지했다.

▷2012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 취재를 위해 플로리다 탬파로 향하던 이른 아침, 워싱턴 로널드레이건 공항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친 적이 있다. 밋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 연설을 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VIP라운지를 이용하지 않고 수행비서도 없이 가방도 손수 들었다. 기내에서도 일반석에 앉았다. 2008년 대선 당시 언론들이 오바마 기사로 도배해 공화당캠프에선 분노했지만 매케인은 언론 탓을 하지 않는 신사 정치인이었다.

▷전투기 조종사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매케인은 1967년 10월 작전 수행 중 하노이시 공장지대에서 소련의 지대공미사일을 맞아 포로가 됐다. 이듬해 그의 아버지 잭 매케인이 미 태평양사령관이 되자 월맹(북베트남)은 아들의 석방을 제안했다. 그러나 조종사 매케인은 “먼저 들어온 사람이 먼저 나간다”는 군인수칙을 따라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가 ‘전쟁 영웅’ 호칭을 얻게 된 이유다.

▷올해 80세인 매케인이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전쟁포로가 무슨 영웅이냐”며 지난해 대선에서 그를 깎아내렸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매케인은 언제나 전사(fighter)였다”는 성명을 냈다. 투병 중에도 그는 “의회 안의 내 스파링 파트너에겐 불행한 일이지만, 나는 곧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대기하라!”며 유머를 잃지 않았다. “주한미군 주둔비용 상당 부분을 한국이 부담하는 데 대해 미국이 감사해야 한다”고 직언하는 ‘친한파’ 매케인의 쾌유를 빈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오바마#존 매케인#인종차별#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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