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저도 경기고 쳤다가 떨어지긴 했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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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는 다음 달 출범할 ‘국가교육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원전 건설 일시 중단을 전격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처럼 한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만난 조희연 교육감(오른쪽)은 “양식 있는 보수인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는 다음 달 출범할 ‘국가교육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원전 건설 일시 중단을 전격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처럼 한다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청 교육연수원에서 만난 조희연 교육감(오른쪽)은 “양식 있는 보수인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 MB는 환경 파괴를 위해 4대강 사업을 했을까? DJ는 북한 핵 개발을 돕기 위해 햇볕정책을 한 것인가?

내가 싫어하는 집단이 추진하면 그들에게는 단 한 치의 선한 의도도 있을 리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동전도 양면이 있건만, 우리의 ‘성전(聖戰)’ 정책에 반대하면 무조건 기득권으로 매도하는 사람들. 서로에게 상대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세상을 망치려는 악마’일 뿐이다. 그래서 저들도 나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 또 하나의 전선이 생겼다. ‘외국어고·자사고 폐지.’

절충은 없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은 죽어야 한다. 더욱이 이 문제는 나보다 더 소중한 내 아이의 인생이 걸린 문제. 안 먹으면 그만인 미국산 쇠고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
 
―요새 많이 힘들겠다.

“새 정부의 외고·자사고 폐지 공약이 막 이슈가 된 시점에 공교롭게 국제중, 외고, 자사고에 대한 재평가 결과를 발표하게 돼서…. 이번 재평가가 폐지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발표 전에는 폐지 반대 측 항의가 많았는데, 지정 취소된 학교가 없다 보니 후에는 폐지 찬성 측에서 많이 항의했다. 내가 폐지론자이다 보니 뭔가 기대한 것도 같고…. 권한이 있으니 모두 지정 취소할 수 있는데 여론의 눈치를 봤다고 오해하기도 하고….”

―지정 취소가 안 되는 것으로 평가 결과가 나왔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한두 곳은 지정 취소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자사고 취소 등 수평적 학교 다양화를 위한 내 노력이 일순간 비판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하지만 비판이 두려워 행정의 합리성을 무시하고 평가 결과를 왜곡할 수는 없었다.”

―왜 외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건가.

“외고·자사고는 고교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출범했다. 하지만 우수 학생들을 독과점하다 보니 결국 설립 목적보다 대학 진학에 유리한 학교가 됐다. 학생 선발 시기, 방법, 교육과정 운영 등에도 특혜적 요소가 있고…. 그 결과 고교 서열화가 유발되고, 일반고 황폐화가 가속화됐다.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을 받게 되고, 그래서 (부모의)소득격차가 다시 교육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고….”

―외고·자사고가 만악의 근원인가. 이들만 없애면 그 문제가 해결되나.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외고·자사고를 개별적으로 혐오하고 핍박하려는 게 아니다. 좀 더 나은 교육을 받으려고 외고·자사고를 선택한 학생, 학부모를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이들 학교 역시 전체적인 우리 교육의 불합리성에서 비롯된 결과적 현상이다. 우리 고교체제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뭔 소리인가.


“(폐지 반대 측은)수월성 교육에 대한 욕구가 많다고 말한다. 수월성 교육이란 서열과 관계없이 학생의 고유한 능력을 최대한 발현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수월성 교육’을 말하면서 실제는 ‘서열화 교육’을 하고 있다. 외고·자사고를 원하는 이유는 더 좋은 입시교육을 받아서 좋은 대학을 가고자 하는 것 아닌가. 이해는 한다. 그 욕구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정상인 것은 아니다. 지금 외고·자사고가 가진 특권적 지위와 역할이 분명히 있고, 그것이 고교체제를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원인 제거 차원에서라도 제도적 폐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재고, 과학고가 제외된 이유는 무엇인가. 고교 서열화라는 측면에서는 외고·자사고와 동일한 것 아닌가.

“영재고, 과학고가 고교 서열화의 정점에서 사교육, 특히 선행학습형 사교육을 유발하는 등 개선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영재고는 영재교육진흥법을 받고 있고, 과학고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공계열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는 등 설립 목적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운영을 하고 있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있다. 이 부분은 가까이는 과학고의 전형 방법 개선, 멀리는 학교 형태에 대한 고민(위탁교육기관 전환 제안 등)도 필요하다고 본다.”

―외고·자사고가 특권학교라고 하지만 그래도 돈으로 들어가는 학교는 아니다. 하지만 평준화 학군제가 된다면 이제는 집이 부자라 좋은 학군으로 이사 갈 수 있는 집만 혜택을 보는 것 아닌가.

“특목고 및 자사고가 사교육에 바탕을 둔 소득과 사회적 격차의 반영임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외고·자사고가 돈으로 들어가는 학교는 아니지만, 일단 입학하면 일반고에 비해 3배가량의 학비가 들고, 부수적인 교육비까지 포함하면 5배 이상의 교육비를 부담하는 학교도 있다. 외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수직적 서열 체계는 이들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계층 배경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이 같은 배경 특성에 따른 분리교육이 계층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한편 민주시민의식 및 미래역량 함양에도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소득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엄격한 감독을 통해 설립 목적대로 운영하게 하면 되지 않나. 꼭 폐지해야 하나.

“성적과 부모 배경이 비슷한 아이들을 따로 모아 교육하는 ‘분리 교육 학교체제’는 사회통합에 역행하는 것이다. 미래에는 남을 이기기 위한 공부, 지식 위주 공부보다 배려·공감·협력 능력과 자기주도적 판단, 결정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런 능력은 동질 집단보다 이질 집단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고 본다. 높은 학비로 장벽을 치고, 조기 선발을 통한 분리 교육으로는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일반고로의 전환이 되레 하향 평준화를 부르는 것 아닌가.

“외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시킨다고 모든 일반고가 갑자기 좋아질 것으로 보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일반고의 교육역량 회복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더라도 필요조건은 되지 않을까.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곧 일반고를 북돋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외고·자사고가 생기기 전에도 이미 고교 서열화는 존재했다. 강남 8학군이 그 반증 아닌가. 평준화 찬성자들은 왜 똑같지 않은 학교를 똑같다고 우기고, 가라고 하나.

“고교 평준화 이후에도 학군 간, 학교 간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중학교에서의 극심한 입시 경쟁을 상당 부분 완화시켰고, 보통 교육과정인 고교 교육의 공공성과 기회 균등을 확보한 면도 있다. 다만,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지역 간, 일반고 간 학력격차 등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인 것은 사실이다.”

―중앙고를 나왔는데, 명문고였나.


“명문고였다. 후기 명문고…. 서울에는 전기에 경기, 경복, 서울고 등이 있고, 후기는 중앙고가 있었다. (경기, 경복 시험 봤나?) 저도 경기 보고 떨어졌다. 하하하. 우리 친구들이 거의 떨어져서 중앙고에 대거 갔지…. 솔직히 과거 명문고였던 곳들이 지금은 외고·자사고 방식을 통해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려는 열망 같은 게 있다.”

―고교 평준화로 과거의 경기, 경복고는 없어졌지만 다시 외고·자사고가 그 뒤를 이었다. 지금 폐지해도 또 제2, 제3의 경기, 경복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교육개혁이 사회개혁과 함께 가야 하는데…. 지금 같은 동일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유지된다면 이번에 폐지돼도 또 제2, 제3의 일류고 체제가 출현할 개연성은 있을 수 있다. 잘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란 결국 잘사는 학부모와 못 사는 학부모와 같은 말이다. 양자의 간극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교육 투자를 하다 보니 엄청난 사교육 격차가 생기고, 이것으로 교육 경쟁의 승자가 결정되고 있다. 사회경제적 서열화를 완화하지 않는 한 이번에 (고교체제를) 해체적으로 개편해도 부활할 가능성은 있다.”

―정책의 목적만큼 중요한 게 추진 방식이다. 시도교육청 평가를 통해 지정을 취소하는 것이 말이 되나. 탈락을 정해 놓고 평가를 하라는 것 아닌가.

“이미 발표했지만 5년 주기의 성과 평가를 통해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본점수만으로도 탈락시키기가 어렵다. 또 시도교육청별로 다양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래서 교육부가 ‘평가를 통한 전환’을 넘어 좀 더 원숙한 다음 단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정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일괄 전환하는 것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만 하면 된다.”

―일각에서는 교육감이 공을 교육부로 떠넘긴다고도 말한다.

“외고·자사고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입장을 갖고 있다. 모양새가 정부에 공을 넘긴 것처럼 보이나 억울한 면이 있다. 오히려 구체적인 로드맵까지 제시하고 강력히 요구했는데…. 교육감에게 주어진 것은 ‘지정 취소권’이 아니라 ‘평가 의무’다. 기존의 평가 기준을 갑자기 변경해서 인위적으로 점수를 낮게 줘 탈락시키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 탈락시키기 위해 평가 기준을 자의적으로 만들고, 0점을 준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평가도 아니고, 매우 부당한 짓이다. 교육감의 권한 남용이 아닌가.”

―너무 첨예한 문제다 보니 결정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치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고….

“그렇다. 교육개혁이 정치에 의해 규정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내년 재·보궐 선거나 지자체 선거 등으로 인해 교육개혁을 추진할 힘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많은 교육단체가 빠른 개혁을 주문하는 것 같다.”

―속도에 치중하면 충분한 논의나 보완책을 마련할 시간이 적고, 그만큼 부작용이 많이 나오지 않겠나.

“그 점은 솔직히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자사고 폐지냐 유지냐의 차원을 넘어 특목고·외고·자사고·일반고의 ‘동시전형’과 함께 ‘선지원 후추첨제’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 고교체제 개혁이 늦어지더라도 추첨제와 결합된 동시전형을 하면 외고·자사고에 일류 학생이 집중되는 것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

―외고·자사고 폐지는 진보주의자들의 사상적 유희 아닌가. ‘저들만 타도하면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식의 겉멋?

“겉멋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순수주의적이고, 원칙주의적인 개혁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실적인 복잡한 문제에 대응해 (그에 걸맞은) 복잡한 패키지를 개발하는 방식보다는 훨씬 더 순수하고 원칙적인 형태의 개혁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외고·자사고 폐지가 그런 점이 있는 거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외고·자사고 폐지#고교 서열화#고교 평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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