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原電정책 시민에 떠넘긴 靑, ‘저의’ 운운하며 입까지 막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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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어제 “반경 30km 안에 320만 명이 거주해 세계에서 원전 주변 인구가 가장 많은 고리 지역에 어떻게 신고리 5, 6호기를 또 짓느냐”며 공사 중단은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 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9일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피해로 이어진다”고 언급했다. 그 대안이 공론화위원회에서 여론을 모아 3개월 뒤 시민배심원단이 두 원전의 운명을 최종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 공약인 ‘신고리 5, 6호기 중단’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고 뭔가.

청와대는 시민과 여론을 앞세워 인사와 정책을 강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신고리 5, 6호기 문제에서도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허가권자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처음엔 공론화위에 에너지 전문가를 넣지 않겠다고 했다가 비판이 일자 말을 바꿨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탈핵(脫核)을 선언할 때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선진국에서 20∼30년이 걸린 원전 폐기를 속전속결로 처리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조치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력 수급의 어려움이나 전기요금 인상 논란에 대해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오히려 다른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탈원전 계획은 전력난을 일으키지 않는 전제에서 수립했다면서도 구체적인 전력 수급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청사진도 없이 먼저 공사를 중단한 이유를 묻는 합리적인 문제 제기를 ‘저의’ 운운하며 가로막는 것은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사람의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밀고 나가서 국정이 잘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아마추어다.

신고리 5, 6호기는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원전과 같은 모델이다. 올가을에는 총 4기 중 1호기 완공식이 UAE 현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이 위험하다고 폐기하려는 원전을 가동해야 하는 UAE의 반응을 정부는 검토라도 했는가. 원전 수출에 공을 들이는 상대국인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등에서는 벌써 한국 원전은 어렵겠다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한다. 우물 안 개구리 식 원전 정책으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신인도까지 떨어뜨리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신고리 5호기#신고리 6호기#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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