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의 오늘과 내일]한국 경제, 한 방에 훅 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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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부장
배극인 산업부장
지난주 국내 산업계에 모처럼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SK하이닉스가 포함된 컨소시엄이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부문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내용이다. 알려진 대로 도시바는 메모리반도체 낸드플래시를 개발한 원조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삼성전자에 이어 2위다. 일본의 자존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지중지 키워 온 ‘자식’을 내놓는 마음이 어떤지 일본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런 일본이 한국을 걱정해주고 있다. 다음은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매각에 깊숙이 관여한 일본 경제부처 간부가 최근 친분 있는 한국 기업인을 만나 한 얘기다. “중국 공장에 가보니 생산라인에는 죄다 한국인 기술자가 붙어 있더라. 품질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해주는 사람은 일본인 기술 고문이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유학한 중국인 젊은 경영자들은 이들과 협업하며 실력을 키우고 있다.” 과거 일본이 한국에 따라잡혔듯 한국도 아차 하는 사이에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는 무거운 충고다.

빈말은 아니다. 중국은 2014년 6월 100조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수입에 의존해 온 반도체를 국산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반도체 굴기’ 선언이었다. 중국 칭화유니그룹은 2015년 말 세계 4위 낸드플래시 업체인 미국 샌디스크를 약 21조 원에 인수했다. 이후에도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대규모 생산라인 투자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선도 기업들이 끊임없이 긴장하는 것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과거 일본 사례에서 보듯 후발 국가로의 기술 이전은 노력해도 시간을 벌 뿐이지 막을 방법은 없다. 깜빡 졸면 죽는 세상이다. 추격을 뿌리칠 돌파구는 한발 앞서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투자하는 길뿐이다.


그중 한 분야가 비메모리 반도체다. 연 400조 원 규모의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비중은 77%에 이른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의 시장이 커지면서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급격히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패망 직전까지 몰렸던 소니가 부활한 핵심 원동력 중 하나도 비메모리 반도체인 ‘이미지 센서’다.

한국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미국 인텔, 브로드컴, 퀄컴에 한참 뒤처져 있다. 삼성전자가 3.1% 시장점유율로 겨우 5위에 올라 있을 뿐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서 성과를 내면서 지난해 겨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는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아직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다.

기업들이 요즘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데 뭔 엄살이냐고 핀잔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실적은 3, 4년 전 이뤄진 투자의 과실일 뿐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삼성전자의 또 다른 미래 성장동력인 자동차 전장사업의 경우 9조4000억 원을 들여 미국 하만을 인수하는 데까진 나갔지만 총수 부재 속에 본격적인 다음 투자는 제자리걸음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반도체 산업을 처음 일으켰을 때의 ‘절박감’을 찾아볼 수 없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글로벌 시장의 최전선에서 미래를 이끌어야 할 청년들은 경쟁을 피해 앞다퉈 ‘공시족’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몇 년 후 주력 산업을 송두리째 중국에 내준 채 망연자실해 있을 한국 경제의 미래가 두려울 뿐이다.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
#sk하이닉스#도시바#메모리반도체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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