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현의 뉴스룸]‘시급 1만 원 시대’가 두려운 노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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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사회부 기자
노지현 사회부 기자
최근 일본 나리타(成田)국제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다 달라진 점을 발견했다. 몇 해 전만 해도 나리타공항의 입국심사 줄은 잘 줄어들지 않았다.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 얼굴사진을 찍고, 지문을 스캐닝하느라 심사대에서의 시간은 더욱 지체됐다. 인천국제공항이 빠른 입출국 수속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나리타공항의 입국심사대 앞에는 모니터가 두 개씩 붙은 기계 10여 대가 배치됐다. 두세 편의 비행기가 연달아 도착하자 등에 ‘Concierge Team(안내팀)’이라고 쓰인 푸른색 티셔츠를 입은 노인들이 사무실에서 서둘러 나왔다. 각자의 기계 앞에 선 이들은 60, 70대였다. 줄을 서는 관광객들에게 “이쪽으로 오세요”, “○○번 앞으로 가세요”라며 간단한 영어로 소통하는데 활력이 넘쳤다. 모니터 이쪽저쪽을 보며 여권을 빠르게 스캐닝하고, 검지를 지문인식기에 대도록 했다. 이 과정은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문제없는 사람은 ‘심사를 받았음’이라는 뜻의 카드를 여권에 끼워줬다. 이들이 젊은이와 다른 점은 목에 다초점렌즈 또는 돋보기안경을 걸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지금의 60, 70대는 과거의 노인과는 다르다. 해외 경험이 있고 한창 시절에는 요즘 젊은이 못지않게 능력을 펼친 사람도 많다. 이들이 입국수속을 앞에서 보조하면서 입국심사대에 앉은 20, 30대 정규직 공항 근로자들의 일처리는 더 빨라졌다.

이들 노인 안내팀원이 받는 급여는 입국심사대의 정규직 젊은이보다 적을 것이다. 최근 서울시나 자치구가 노인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도입한 직종의 급여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월 100만 원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100세 시대’를 맞아 사회연금제도도 튼실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들이 더 많다. 돈도 돈이지만 사회에서 자신이 소외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 젊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까지 최저시급 1만 원’ 공약이 가시화하는 현실을 보면서 나리타공항의 노인들과 우리나라 노인들을 생각한다.

현재 시급 6470원인 최저임금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크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분명히 낮은 수준이다. 20∼40대는 최저임금이 높아지면 그만큼 소비활동이 늘어난다.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미루던 젊은이들이 ‘혹시나’ 하며 마음을 돌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직면한 저출산 문제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시급 1만 원 찬성론자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60대 이상 아파트 경비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이들은 시급이 올라가면 경비원 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자신이 바로 감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불안에 떤다. ‘적게 받더라도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이들 노인에게는 ‘시급 1만 원 시대’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편의점 같은 자영업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과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일은 중요한 현안이다. 그러나 시급 1만 원 시대를 두려워하는 노인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부가 알고 추진했으면 한다. 의도가 선하다고 결과도 선한 것만은 아니다. 나리타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올 때 “Have a nice time(좋은 시간 가져요)”이라며 웃던 안내팀 노인이 떠오른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
#최저시급 1만원#60대 이상 아파트 경비원#노인일자리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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