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대 1… 공시족 “라면 먹을 시간도 아까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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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7, 9급 공채시험 하루 앞둔 노량진 공시촌 가보니

서울시 7, 9급 공채 필기시험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대형 고시학원 풍경. 복도에 설치된 TV 모니터에서
 ‘한국의 공무원 시험 열풍’을 주제로 일본 방송이 방영한 시사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서울시 7, 9급 공채 필기시험을 하루 앞둔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대형 고시학원 풍경. 복도에 설치된 TV 모니터에서 ‘한국의 공무원 시험 열풍’을 주제로 일본 방송이 방영한 시사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나오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사람도 많은데 앞을 잘 보고 다녀야죠!”

“죄송합니다. 제가 내일 시험이라….”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출입구 계단을 내려가던 20대 여성이 올라오는 남성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부딪쳤다. 여성이 손에 든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단기 완성’이라는 표지 글씨가 보였다. 공무원 시험 준비용 참고서였다. 여성은 남성에게 거듭 사과를 하고는 승강장 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의 눈은 바닥에서 집어든 참고서에 다시 박혀 있었다. 3년째 노량진 고시촌에서 서울시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여진(가명·29) 씨는 24일 시험을 앞두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김 씨는 “시험이 코앞이라 시간이 없지만 엄마가 해주는 밥이라도 먹으면 긴장이 좀 풀릴까 해서 잠시 집에 다녀오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설은 가족들과 마음 편히 보냈으면 좋겠다”며 다시 책을 들여다봤다.

2017년도 서울시 7, 9급 공채 필기시험을 하루 앞둔 이날 노량진 고시촌 곳곳에선 수험생들의 긴장과 초조가 느껴졌다. 평소 수험생들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즐겨 찾던 인형뽑기방은 한산했다. 올해 서울시 7, 9급 공무원 선발 인원은 1613명. 모두 13만9049명이 응시해 평균 경쟁률은 86.2 대 1로 지난해 87.6 대 1에서 큰 변화가 없다.

서울시 공무원은 다른 지방자치단체보다 많이 뽑는 데다 응시 자격과 주거지에 제한이 없고 서울에서 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제2의 국가직’으로 꼽힌다. 공시생이 몰리는 이유다.

이날 독서실과 고시원이 밀집한 만양로 고시식당들의 점심 풍경은 어디나 비슷했다. 식탁에 앉은 응시생들은 부지런히 밥을 먹으면서도 다른 손에 쥔 요약 노트 등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후 2시 반경 대형 고시학원 옆 편의점에서는 7년차 공시생 심모 씨(30)가 컵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때웠다. 라면 몇 가닥을 입으로 집어넣는 시간도 아까운지 역시 한 손에는 책을 들었다. 처음 5년간은 7급을 준비했다는 심 씨는 잇따른 낙방에 지난해부터 9급 시험으로 ‘눈을 낮췄다’. 그는 “나이가 많아 올해가 마지막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이번에는 꼭 끝을 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고 했다.

자식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어머니도 있었다. 경남 거창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이모 씨(59)는 아들의 밑반찬을 챙겨 왔다. 이 씨는 “내일이 시험이라고 해서 부랴부랴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을 만들어 왔다”면서 “농사 일손이 달려 자취방에 밥만 안쳐 놓고는 얼른 나와야 한다”고 말한 뒤 종종걸음을 쳤다.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공언하면서 고시촌은 전반적으로 들뜬 분위기다. 올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는 김주혁 씨(26)는 “기대가 크다. 공무원 시험 준비에 뛰어드는 친구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경찰시험 준비생 이모 씨(29)는 “공무원 많이 뽑는다는 소식에 경쟁률만 높아졌다”고 말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김동혁 기자
#공시족#공채시험#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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