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하늘로 떠났지만 공군 가족이 날아왔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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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감동시킨 순직 조종사 이한기 소령 아내의 편지

이한기 공군 소령이 생전에 찍은 가족사진(위 사진)과 공군 동료들의 심금을 울린 아내 이수진 씨의 편지. 이 소령은 2003년 9월 F-5 전투기를 몰다가 기상 악화로 산 중턱에 충돌해 순직했다. 이수진 씨 제공
이한기 공군 소령이 생전에 찍은 가족사진(위 사진)과 공군 동료들의 심금을 울린 아내 이수진 씨의 편지. 이 소령은 2003년 9월 F-5 전투기를 몰다가 기상 악화로 산 중턱에 충돌해 순직했다. 이수진 씨 제공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홀로 아이를 키워 내겠다는 14년 전의 선택이 옳았음을, 지난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준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16일 강원 원주의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서 열린 하늘사랑 장학재단 기부자 초청 행사장. 이수진 씨(43·경북 김천 동부초 교사)가 담담하게 편지를 읽어 내려가자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씨의 남편인 이한기 소령(공사 44기)은 2003년 9월 이 부대 소속 전투기 조종사로 근무하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F-5 전투기를 몰고 원주기지에서 전남 광주기지로 전개 비행을 하다 기상 악화로 야산에 추락해 동료 조종사와 함께 순직한 것. 당시 29세로, 고향(김천시)이 같은 아내와 결혼한 지 4년째 되던 해였다.

이 씨는 “비가 내리다 말다 하던 흐린 날, 남편은 ‘잘 다녀오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그렇게 좋아하던 하늘로 전투기를 타고 떠나 버렸다”면서 “22개월이던 딸은 이제 열일곱 살의 여고생이, 남편과 아이밖에 모르던 20대 후반의 새댁은 어느덧 40대 중반의 초등교사가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남편을 현충원에 안장하면서 ‘당신을 쏙 빼닮은 딸을 혼자서라도 남부럽지 않게 행복하고 씩씩하게 키우겠다’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했다. 아빠 묘소에서 ‘아빠 힘내세요’를 부르는 어린 딸의 해맑은 모습에 가슴이 무너졌고, 놀이공원에서 아빠 목말을 타고 깔깔 웃거나 유치원 운동회에서 환한 표정으로 아빠 손을 잡고 달리는 또래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딸을 보면서 자신의 선택이 아이에게 큰 짐이 되는 것 같아 늘 죄스러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사고 10년째 되던 해에 본 적도 없는 남편의 동기생과 아내분들이 전국 곳곳에서 남편의 묘소를 찾아주고, 자신과 딸의 손을 꼭 잡아줘서 남편이 한 일과 그간 딸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씨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 과외 한번 못 시켜줬는데도 과학고에 당당히 입학한 딸이 너무도 기특하다”면서 “딸은 힘들고 지치는 순간마다 나를 일어서게 한 힘이 됐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아빠가 있는 평범한 아이였다면 다른 아이들처럼 뭐든 느긋하게 살았겠지만 난 다르다. 아빠는 우리나라의 하늘을 지키던 자랑스러운 분이었다”고 딸이 늘 위로해줬다고 전했다.

이 씨는 “사랑과 애정의 눈길과 보살핌을 준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 공군가족이라는 이름을 빛낼 수 있도록 더 힘차게 살아가겠다”며 “딸과 함께 여러분의 큰 사랑을 더 많은 이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편지를 맺었다.

이 씨는 2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남편을 잃은 후 저와 딸이 혼자 버티며 살아온 게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다”며 “나라를 위해 일하다 순직한 국가유공자 가족에 대해 정부 차원의 더 세심한 배려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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