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의 뉴스룸]엄마가 미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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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첫아이의 출산을 앞두면 궁금해지는 게 많다. 특히 육아용품의 세계는 끝이 없다. 범보, 부스터, 바운서, 힙시터에 이르기까지 난생처음 들어보는 용품들이 쏟아진다. 각 제품의 정확한 차이점과 장단점, 주요 브랜드별 특성까지 정확히 알아야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보통 여자들은 결혼을 앞두고 극심한 선택장애를 경험하게 되는데 육아는 그것의 두 배쯤은 되는 압박감을 준다. 내 아이가 쓰게 될 것이라 결코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다. 많은 엄마들은 집념의 검색 끝에 비교 분석을 똑소리 나게 마친다. 이런 정성으로 다른 걸 했다면 뭐가 돼도 됐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따져 봐도 꼭 한 번씩 ‘헛똑똑이’가 되는 일이 생긴다. 얼마 전, 출산을 앞두고 꼼꼼히 육아용품을 준비 중이던 친구가 ‘선배 맘’인 내게 특정 브랜드의 매트를 아냐고 물었다. 체온조절 효과가 있다는 신소재 ‘아웃라스트’로 만든 제품인데 유해성 논란에 휩싸였다는 거였다. 유아들의 태열, 아토피에 좋다더니 원인 불명의 잔사 현상(섬유에서 흰 가루가 떨어지는 것)에 알레르기성 두드러기, 심한 발진 유발까지 의심받고 있었다. 문제의 제품은 ‘국민 쿨매트’로까지 불렸다.

친구는 미리 사뒀던 제품을 모두 환불했다고 했다. 부랴부랴 찾아보니, 우리 집에도 이 회사에서 나온 유모차 매트와 담요가 여럿 있었다. 대부분의 쇼핑몰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어 지나치기가 어려운 브랜드였다. 유모차에 탈 때마다 그 제품을 깔고 곤히 잠들었던 아이가 떠오르며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장 문제가 된 건 해당 소재가 들어간 제품들뿐이라 해도 찝찝한 건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겐 이미 독성 화학용품 오용으로 인한 사회적 상처가 있다. 세슘 분유, 메탄올 물티슈 논란 등이 터질 때마다 ‘옥시 사태’의 그림자가 어른대 가슴이 철렁한다. 하지만 엄마들이 아무리 꼼꼼히 본들,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업체가 제공하는 정보 이상을 알기 어렵다. 못 믿을 천연·무독성 광고에도 속수무책이다. 성분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생활화학용품도 많아 전문가인들 부작용을 알 수 없다. 그러니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이번에는 운 좋게 피해갔다는 안도, 다음번엔 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뭐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교차할 뿐이다.

정부는 유해성 여부와 경위를 밝히기 위해 문제의 제품뿐 아니라 같은 소재가 적용된 다른 제품들까지 모두 안전성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업체도 문제가 커지자 사과문을 게재하고 문제 제품들은 리콜을 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원인 모를 아이의 잦은 기침이나 기관지염도 이것 때문은 아니었는지 뒤늦게 의심을 품기 시작한 많은 엄마들에겐 어쨌거나 모두 뒷북일 뿐이다.

아이들은 얼룩덜룩 발진이 난 채로 잠들어 있다. 무책임한 기업과 매번 뒷북치는 정부에 화가 치민다. 하지만 잠든 아이를 토닥이며 할 수 있는 말은 여전히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미안해’밖에 없다. ‘무독성’이라고 홍보하는 제품들, ‘국민’자 붙여가며 마케팅 하는 제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쏟아진다. 얼마나 더 똑똑해져야만 안심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인지, 또다시 ‘헛똑똑이’가 되고 만 엄마들은 걱정이 앞선다.

박선희 채널A 산업부 기자 teller@donga.com
#엄마#육아#출산#국민 쿨매트#옥시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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