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코리안 지오그래픽]‘바다의 사막’이 말을 건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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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대이작도 ‘풀등’

썰물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풀등에서 갈매기 한 마리가 수중의 모래에서 휴식하느라 물 밖인줄도 모르고 있던 조개를 찾아 포식하고 있다. 풀등은 시간이 지나며 면적을 기하급수적으로 넓히는데 그 모습이 바다 한가운데 사막을 연상시킨다. 그것도 아주 고운 모래의 아름다운 사구 모습으로. 대이작도=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썰물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풀등에서 갈매기 한 마리가 수중의 모래에서 휴식하느라 물 밖인줄도 모르고 있던 조개를 찾아 포식하고 있다. 풀등은 시간이 지나며 면적을 기하급수적으로 넓히는데 그 모습이 바다 한가운데 사막을 연상시킨다. 그것도 아주 고운 모래의 아름다운 사구 모습으로. 대이작도=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여행 취재를 하면서 깨친 진리 하나. 우리나라 관광지도 주중에 찾으면 그리 좋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방문객이 적다 보니 산도 바다도, 호수도 강도, 산사와 성도 독차지한 느낌이라서다. 그건 섬과 해변도 마찬가지. 태국 필리핀까지 찾을 이유마저 사라질 정도다. 물론 그러려면 성수기를 피해 5, 6월에 찾아야 한다. 며칠 전 그 진리를 서해 대이작도(인천 옹진군 자월면)에서 확인했다. 깨끗한 황금모래 해변엔 단 한 명도 없었고 섬은 절간처럼 조용했다.

굳이 거길 찾은 건 ‘풀등’ 때문이다. ‘풀치’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유독 이 섬 바다에만 나타나는 특별한 자연 현상. 수중의 모래언덕이 썰물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원인은 조수간만으로 인한 수위 변화. 그래서 해양생태계 보호지역(55.7km²)으로 지정됐건만 그럼에도 매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모래 채취 때문이다. 2년 만에 벌써 11%가 줄었다(국토해양부 조사)고 한다. 그걸 막는 길, 모두가 찾아 고발하며 보존의식을 공유 확대하는 것이다.

90분 만에 만나는 자연의 기적

오전 8시 인천연안여객터미널 부두. 대이작도행 카타마란(쌍동선)이 출항했다. 자월도와 승봉도, 소이작도를 들러 종착 섬에 접안까지 걸린 시간은 단 90분. 청량리∼인천 수도권전철 1호선 운행 시간(89분)이다. 승객 중 관광객이라곤 등산객 10여 명뿐. 주말엔 승선표가 동날 만치 승객이 많지만 주중엔 이렇듯 한적하다. 그날 하늘은 맑았고 기온은 섭씨 27도. 햇빛도 쨍쨍해 한여름을 방불케 했다. 그럼에도 섬마을은 정적마저 감돌 만치 한가로웠다. 그래서 섬에 머무는 것 자체로 힐링이 되었다.

서해 파노라마의 부아산

부아산 정상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 저 앞 섬이 소이작도다.
부아산 정상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 저 앞 섬이 소이작도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아(負兒)산(162.8m). ‘아기를 짊어 메다’는 한자어는 ‘수태’(受胎·아이 배기)를 시사한다. 장골마을 입구에서 본 삼신할미가 아이를 안은 조형물이 그걸 말한다. 산에 오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이다. 원시림 숲길로 오르기를 40분(2km). 8분 능선의 공원 주차장에 이르니 산정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인다. 이어 구름다리(70m)가 협곡을 가로지르는데 그걸 건너니 봉수대(봉수 5개)와 팔각정. 조선시대에 왜구와 해적을 감시하던 경비시설인데 여기서 올린 불과 연기는 한성(서울)의 목멱산(남산)까지 전달됐다.

봉수대에선 정상 바위봉이 코앞. 하지만 온통 칼바위라 길은 험하다. 뾰족한 송곳처럼 모난 바위를 밟고 가는데 그나마 경사가 없어 어린이도 무난하다. 드디어 정상. 옆 전망 덱(deck)에 서니 형제 섬 소이작도가 앞마당처럼 다가온다. 덕적도 자월도 등 주변 섬도 270도 파노라마로 조망된다.

풀등의 기적 현장

남동편 승봉도와 형제섬 사승봉도(무인도)를 보기 위해 공원으로 내려갔다. 공원에도 팔각정(아기업은재)이 있는데 거기서 조망되는 풍광도 멋지다. 자월도와 승봉도, 사승봉도는 물론 그 뒤편으로는 영흥도와 대부도도 흐릿하게 보였다. 시계를 보니 정오. 나는 그 팔각정에서 승봉도와 이 섬(대이작도) 사이의 바다를 주시했다. 기적의 자연인 풀등이 드러날 시점이어서다. 그 징후는 수면 위로 살랑대는 파도다. 풀등이 조류 흐름을 막아 일어나는 변화다. 10여 분 후, 긴 띠 모양으로 모래밭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유려한 곡선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350mm 망원렌즈로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보다 가까운 작은풀등 해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숲가에 야영장을 갖춘 널찍한 이 해변의 한 끝. 거기 바위해안에는 나무 덱 길이 놓였고 그 끝에는 팔각정이 있다. 낙조 감상에 그지없이 좋은 전망대다. 하지만 그날 내겐 풀등 관찰대가 됐다. 수평선을 배경으로 드러나던 풀등이 여기선 좀 더 명확하게 관찰됐다. 산정 공원에서 이리로 이동하는 40분 사이, 띠 모양으로 모습을 드러낸 풀등은 벌써 축구장 몇 개 크기로 확대되어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사막

나는 그 팔각정 아래서 보트에 올랐다. 풀등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풀등2호란 이 보트는 마을 이장 김유호 씨(50)가 모는 풀등답사 전용선(7인승). 그는 벌써 34년째 무사고로 풀등답사선을 운항 중인 전문가다. 그런데 막상 풀등에 이르자 발이 선뜻 내디뎌지지 않았다. 갈매기조차 앉지 않아 어떤 인공의 흔적도 없는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는 게 자연에 대한 훼손이나 공격처럼 죄책감으로 다가와서다. 그 정도로 풀등의 모습은 아름답고 순수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자연보다도.

그러다 눈을 질끈 감고 용감하게 풀등으로 뛰어내렸다. 그런 내 발자국은 모래밭에 선명하게 찍혔다. 나는 수백 m를 천천히 걸으며 하늘을 배경으로 바다 한가운데 펼쳐진 사막 모습의 풀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풀등은 점점 더 넓어졌다. 오전에 이장 김 씨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이 바다의 수심은 cm 단위로 내려가지만 그로 인해 드러나는 풀등의 면적은 수백 m² 단위로 늘어난다는. 최고·최저 수심의 차이는 80cm지만 면적 차이는 몇 배나 된다고 한다.

이렇듯 풀등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하루 두 번, 한 번에 여섯 시간이나 지속된다. 드러나기 시작하는 초기와 물에 잠기는 말기엔 물 위를 걷는 듯한 장면도 촬영할 수 있다. 바닥에 물이 찰랑일 때 촬영하면 바다 한가운데 선 모습이 연출돼서다. 피서철엔 여기에 파라솔을 펴고 그 아래서 이 기적을 즐기는 이도 있단다. 아이에게도 풀등은 천국이다. 모래 속에 백합 맛조개 낙지 등이 숨어 있어서다.

해적섬 이적도

손을 편 모양의 오형제바위(오른쪽) 뒤편으로 카페리가 오고 있다.
손을 편 모양의 오형제바위(오른쪽) 뒤편으로 카페리가 오고 있다.
이작도(伊作島)란 이름엔 사연도 많다. 이작도의 대소가 뒤바뀐 게 첫 번째. 옛날엔 앞섬이 대이작도였다. 그런데 측량해 보니 소이작도가 더 컸다. 그래서 이름을 뒤바꿨고 그게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작’이란 이름도 그렇다. 원래는 ‘이적’(夷敵 혹은 二敵)이었단다. 그 적(敵)은 고려 말∼조선 초에 이 바다에서 세곡(세금으로 바친 쌀)선을 노략질하던 해적. 그중엔 왜구도 있었다고 한다.

대이작도는 갯바위 낚시가 잘되는 섬으로 오래전부터 이름났던 곳. 돌을 던져 넙치를 잡을 정도였다고 한다. “섬에서 먹는 생선은 100% 자연산이에요. 양식장이 없으니까요. 굴도 많이 나는데 역시 자연산이지요. 양식도 해봤지만 잘 안 돼요. 가격은 인천과 비슷하고요.”(주민 김현정 씨·48). 그런데 그렇게 잘 잡히는 물고기로 주민들은 큰 덕도 보았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의 바위(화강암질의 혼성암) 얘기다. 그건 25억1000만 년 전 것으로 2004년 여기로 낚시하러 왔던 조문섭 명예교수(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의 눈에 띄어 학계에 보고됐다. 그때까지는 화천(강원도) 것이 최고(18억7000만 년 전)였다.

박시춘과 영화 ‘섬마을 선생’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1968년 개봉영화 주제가)을 작곡한 박시춘과 대이작도의 인연도 물고기를 통해 이어졌다. 그도 낚시를 좋아해 자주 찾았다. 그때 그로부터 기타를 배운 주민이 있었는데 지금 현역 연주인으로 활동 중이란다. 그런 박 씨 덕분인지 영화 ‘섬마을 선생’이 여기서 촬영됐다. 1967년 당시 출연한 엑스트라 대부분은 섬 주민이었다. 당시 한 살배기였던 이장 김 씨도 그중 한 사람. 데뷔작이 된 이 영화에 늦깎이 여학생 역으로 출연한 배우 안인숙이 등에 업었던 아이가 그다. 그때 엑스트라들은 현재 60, 70대 노장으로 지금도 섬에 살고 있다. 출연료는 50원(라면 한 개 15원)이었고 매일 눈깔사탕도 주었다고 한다. 낙도분교로 지어 촬영한 세트도 계남마을에 여전하다. 선착장 부근의 ‘문희 소나무’ 역시. 섬마을 선생(오영일)을 태우고 떠난 배를 보며 한 여인(배우 문희)이 하염없이 눈물짓던 장면에 등장한 나무다.

대이작도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인천연안여객터미널 출항 쾌속선·카페리 이용. 탑승 시 신분증 필수. ◇쾌속선: 쌍동선 스마트호로 90분 소요(자월도 승봉도 소이작도 경유). 출항 횟수·시각은 매달·요일별로 다르다. 고려고속페리(www.kefship.com)에서 확인. 요금(왕복·어른) 4만1700원. 1577-2891(ARS 안내) 032-761-1950(전화 예매) ▽출항 시간(5월) △월·목: 오전 8시 반 △화: 오전 8시 △수: 오전 8시 반, 오후 2시 반 △토: 오전 8시, 정오 △일: 오전 8시, 오후 2시 반 ◇카페리: 대부고속훼리(www.daebuhw.com)가 매일 1회 운항(2시간 소요), 1만3200원(편도). 032-887-6669. ▽출항 시간 △인천: 오전 8시 △대이작도: 오후 3시 40분.

대이작도: 인천 남서방 54km(옹진군 자월면).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병마를 키우던 섬. 152가구(293명)가 대부분 민박·낚시업에 종사. 횟집 8곳, 숙소(민박 펜션) 50곳. 인천남부초등학교 이작분교엔 두 섬 어린이 네 명만 등교(교사 2명). 생선 주종은 넙치, 가자미. 5월엔 농어, 놀래미가 잡히는데 어른 팔뚝 크기 농어는 6만∼7만 원. 섬 생선은 100% 자연산. 민박집에서도 주인이 잡은 생선으로 회와 식사를 제공. 식당보다 저렴하다. 장골마을의 비닐하우스 식당에선 섬고사리 등 반찬을 담은 백반을 판다.

풀등: 크기는 동서 3km, 남북 1.2km. 학술적으론 ‘하벌천퇴(下伐川退)’라 불린다. 장골마을에 있는 해양생태관에 가면 상세히 알 수 있다. 풀등답사는 전문여행사 ‘섬투어’(www.seomtour.kr)의 상품을 이용한다. 이작도의 풀등과 승봉도의 그물체험 등 두 섬을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오는 패키지(매일 출발)와 백령도 패키지 등 다양하다. 쾌속선 승선권(인천 출발) 예매도 대행. 032-761-1950

운임 지원: 대상은 인천 시민과 섬 주민을 제외한 옹진군 섬 숙박여행자(1∼4박). 올해 말까지 승선운임 50%를 지원한다. 출발 이틀 전까지 신청.
#서해 대이작도#부아산#풀등#이작도#박시춘#섬마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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