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憲裁·검찰을 ‘정권 코드’로 바꾸려는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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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또 사실상 검찰 2인자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임명했다. 김 후보자는 현 8인의 재판관 가운데 가장 진보적 성향이고 윤 지검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때 항명 파동을 일으킨 인물이다. 대통령은 헌재와 검찰 수뇌부 인사를 단행하면서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혔다. ‘코드 인사’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헌법의 최후 보루다. 헌재는 국회가 제정한 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도 이전처럼 국가 주요 정책을 판단하며 대통령의 탄핵까지도 결정한다는 점에서 국기(國基)를 지키는 기관이다. 헌재소장은 어느 한쪽에 치우친 성향보다는 합리적이고 열린 사고를 가진 중립적 인물이 바람직하다고 다수 국민은 생각할 것이다.

김 후보자는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유일하게 기각 의견을 냈다. 그는 “통진당 강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으며 일부 당원의 행동을 당의 책임으로 귀속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하혁명조직 RO의 내란음모까지도 이석기 개인의 일탈로 본 것은 아무리 소수의견이라도 헌법을 수호해야 할 재판관의 균형감을 의심케 한다. 김 후보자는 2015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외노조로 만든 법률 조항을 합헌 결정할 때도 홀로 위헌을 주장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2014년 4월부터 30개월간 이뤄진 693건의 헌재 결정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김 후보자는 가장 진보좌파적 성향으로 나타났다.

헌재소장은 위헌 여부를 가리는 결정을 할 때는 재판관 한 사람 몫의 판단을 하지만, 헌재 운영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내년 6월 개헌을 공언했다. 가장 좌파적인 헌재소장을 지명한 대통령의 헌법 인식이 개헌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윤 신임 서울지검장 인사는 검찰 내부에 충격파를 던졌다. 당장 이날 사표를 낸 김주현 대검 차장과 이창재 법무부 차관을 필두로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을 것으로 보인다. 윤 지검장 인사에 따른 ‘기수 파괴’는 정권 초 인사 쇄신을 감안하더라도 파격이다. 문 대통령은 윤 지검장에 대해 “현재 우리 검찰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역시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 공소 유지”라며 “그 점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것이 서울중앙지검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 아니고 뭔가.

헌재와 검찰은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생명이다. 이를 지키려면 인사부터 중립적이어야 하고 청와대는 검찰의 독립성을 흔들지 말아야 한다. 어제 인사가 국가의 보루가 돼야 할 헌재와 검찰에 ‘알아서 기라’는 신호를 보낸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헌재를 좌파 성향으로 바꾸고, ‘박근혜 검찰’을 ‘문재인 검찰’로 대체하려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 아니길 바란다.
#문재인#헌법재판소장#김이수#서울중앙지검장#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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