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동정민]“공장이전 막을수 없습니다”… 공수표 대신 소신 밝힌 佛 마크롱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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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국제부
동정민·국제부
프랑스 북부 소도시 아미앵은 대선 결선 투표에 오른 중도 신당 앙마르슈(전진)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고향이다. 마크롱이 25일(현지 시간) 아미앵 월풀 공장에 들어서자 고향민들은 ‘대통령 마린 르펜’을 외쳐댔다. 마크롱을 향한 조롱이었다. 두 시간 전 경쟁 후보인 극우 정당 국민전선(FN) 마린 르펜이 이곳을 찾았을 때 환호하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언론들이 “마크롱이 고향에서 굴욕을 당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승자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미국계 가전업체인 월풀은 싼 노동력을 찾아 내년 6월 아미앵 공장을 폴란드로 이전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286명의 노동자가 실업 위기에 처해 있다.

르펜은 공장 주차장에 서서 “무슨 일이 있어도 월풀 공장의 폴란드 이전을 막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어 “공장 이전은 모두 끔찍한 세계화 때문”이라며 “프랑스 국경을 막겠다”고 약속해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발언이었다.

마크롱의 발언은 달랐다. 야유 속에서 마이크를 든 마크롱은 “여러분, 기적과 같은 해법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제가 어떻게든 공장이 유지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빈 공약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르펜 후보는 세계화를 중단하고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수천 명의 일자리가 사라집니다. 불가능한 약속입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여러분들이 정리해고 당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르펜이 공장을 찾은 시각, 마크롱은 노조 대표들과 만나 실질적 해법을 찾고 있었다. 10분 동안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고 떠난 르펜과 노동자들의 고충을 나누며 조용히 해법을 모색한 마크롱, 누가 더 지도자다운 모습일까.

장밋빛 약속과 네거티브로 분노를 일으키는 선동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손쉬운 선거 전략이다. 그러나 분열에 따른 선거 후폭풍의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대통령 출마 자격(만 40세)도 없는 39세 마크롱의 솔직하게 털어놓고 함께 대안을 찾는 용기가 더 눈에 띈다.

마크롱에게 야유를 퍼부은 한 노동자는 그가 떠난 뒤 “마크롱이 우리를 도와줄 거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그는 진정 노력했고, 조용했고, 솔직했다”고 말했다.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마크롱#프랑스 대선#르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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