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하준경]경제양극화 해소에 실패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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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가 체감 못하는 성장 과실, 고른 성과분배 힘든 양극화 탓… 교육격차, 세계화로 더 벌어져
교육여건개선, 노동차별 철폐 등 치밀하고 종합적인 접근 절실
대선 후보들의 복지공약… 매의 눈으로 지켜봐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통화기금(IMF)이 잇따라 한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조금씩 올렸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살림이 나아지는지 실감하지 못한다. 성장률은 플러스인데 내 삶은 왜 계속 고단한지, 성장의 과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국민이 태반이다. 다수가 성장의 효용을 못 느낄 만큼 경제가 양극화됐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앞에서 대선 후보들은 복지 확대를 약속한다.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복지를 위한 증세가 쉽지 않은 우리 현실에선 재분배로 격차를 줄여 준다고 하기 전에 일차적으로 시장에서 버는 소득 자체의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더 치열하게 논의해야 한다.

양극화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골딘과 로런스 카츠가 지적한 교육과 기술의 경주(race) 문제다. 교육이 기술혁신을 못 따라가면 대다수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이때 기술혁신에 접근할 수 있는 소수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벌어진다. 반대로 교육이 기술을 따라잡아 많은 사람이 새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 격차가 줄어든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중반에는 교육이 기술을 앞섰으나, 최근에는 교육 부문이 정체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됐다. 그래서 골딘과 카츠는 교육의 양적·질적 개선을 통해 인적자본 분포를 고르게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관건이라고 주장한다.

둘째는 세계화다. 고소득층의 금고 돈은 전 세계를 누비며 고수익을 추구할 수 있게 된 반면 저숙련 노동자들은 저개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근로소득은 오르지 않는데, 몰려다니는 돈들은 부동산 가격을 높이고 임대료를 올린다. 결국 서민과 중산층은 빚을 지고 원리금과 임대료 부담에 짓눌린다.

셋째는 정책과 제도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와중에 이윤, 임대료 등 자본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한 각종 조세·금융 정책이 시행되면서 근로소득자가 불리해졌다고 지적한다. 부자 감세, 과도한 금융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이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긴 것이다.

이런 흐름은 우리나라에 와서 더 증폭된다. 교육과 기술의 경주를 보면 우리는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획일적 교육과 소모적 입시경쟁에 막대한 공적·사적 자원을 쏟아 붓는다. 세계화는 외환위기 이후 안전장치 없이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폭증한 가계부채와 높은 주거비는 가계소비를 옥죈다. 제도적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불공정 거래,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이 온존하면서 신자유주의와 봉건적 신분질서가 기묘하게 얽혀 있다.

이렇게 복잡한 경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치밀하고 종합적인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실패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중소 벤처기업을 지원해도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 인력 빼가기 등이 존재하는 한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아무리 훌륭한 인재를 많이 키워도 중소기업이 합당한 임금을 주지 못하고, 창업은 실패로, 실패는 패가망신으로 이어지는 기업 생태계에선 대기업·공기업·공무원 부문만 좋은 인재를 골라 쓰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약자를 돕겠다는 선의가 오히려 강자들을 배불리는 빨대효과로 끝나기 십상이다. 나아가 일부 강자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이 불평등 자체보다 더 나쁘다고 지적했던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 특히 정치권을 활용한 ‘빨대’의 제도화를 도모해 사태를 악화시킨다.

결국 문제 해결은, 교육을 기술혁신의 흐름에 맞게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양적·질적으로 개선하면서 동시에 산업구조를 공정경쟁의 생태계로 바꾸고, 노동시장 차별 철폐, 지대추구 행위 억제, 조세·금융정책의 포용적 개편 등 물샐틈없는 종합적 개혁 패키지를 갖춰야만 가능하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복지 확대도 좋은 일자리 창출도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 시대적 과제들에 대해 대선 후보들이 어느 정도의 식견과 해결 의지를 갖고 있는지, 정책은 과연 정합성 있게 잘 짜여 있는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흠집 내기가 난무하고 감성과 이미지를 앞세우는 선거운동 속에서도 날카로운 매의 눈을 가져야 할 때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양극화#한국경제 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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