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 청년실업-양극화 큰 걱정… “한국 정의롭지 않다” 46%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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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설문조사


민정(가명·19) 양은 아버지와 지적장애를 가진 두 살 아래 남동생과 살고 있다. 어머니는 2년 전 가출했다. 아버지는 오전 4시부터 두부공장에서 일한다. 오전 9시가 되면 직접 트럭을 몰고 시내 곳곳을 돌며 두부를 판다. 그렇게 매달 150만 원가량을 번다. 하지만 세 식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남동생의 병원비와 언어치료비만 해도 수십만 원이 든다.

실업계고교 3학년인 민정이는 현재 취업반에 있다. 하루빨리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꿈이다. 집안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다. 그래서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고 오후 11시까지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다. 밤 12시 무렵 퉁퉁 부은 다리를 이끌고 집에 오면 늘 녹초다.

그래도 틈틈이 공부해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8개나 땄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할 자신이 없다. “자격증은 다들 많이 있거든요.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만…. 솔직히 시간도 부족하고 하루하루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막막해요.”

○ 국가가 보듬지 못하는 아이들


민정이는 “나라에서 어려운 가정의 자녀를 위한 취업준비교육을 적극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각종 복지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민정이처럼 학교는 물론이고 사회와 국가로부터 정상적인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여전히 많다.

이 때문에 한창 꿈을 키워 나갈 청소년들마저 취업난과 빈부 격차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아일보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공동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사회인식 실태를 분석했다. 우선 중고교생 710명에게 ‘현재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가장 많은 학생이 ‘청년실업 해소’(35.2%)를 꼽았다. 빈부 격차 해소(25.4%), 경제 발전(18.2%)이 그 뒤를 이었다. 남북 통일(8.6%)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만큼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박정환 군(18·고3)은 “소위 말하는 ‘SKY’ 대학에 진학해도 취업이 힘들다는 얘길 들으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빈부 격차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조모 양(13·중1)은 “친구들 사이에 서로 비교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최순실 국정 농단을 지켜본 청소년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이들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상식은 ‘정의’와 거리가 멀었다. 초등생을 포함해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10명 중 5명이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답했다. 아이들은 또 ‘행복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할 인물’로 ‘대통령’을 1순위(40%)로 꼽았다. 정치인이 그 다음(13.4%)이었다. 반면 ‘열심히 일해 줄 것 같은 사람’으로는 대통령이 1.8%로 5위, 국회의원이 2.4%로 3위에 그쳤다. 이는 그간 대통령과 정치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인식 탓으로 풀이됐다.

○ “청소년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길”

청소년들은 정부 정책이나 정치에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이건영 군(18·고3)은 “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정책을 어른들끼리 논의하는 거죠?”라고 반문했다. 이 군은 “포퓰리즘식으로 각종 공약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이끌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문에 응한 중고교생 중 절반 이상은 “만 18세로 투표권을 하향 조정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투표권이 주어진다면 투표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도 10명 중 8명은 ‘그렇다’고 응답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박경주 양(15·중3)은 “외국에 비해 한국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정치에 참여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우리 의견을 반영할 수 있을지부터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편 가르는 분위기에 휩쓸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사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청소년이 많았다”며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 사회복지 인프라 구축 등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이들이 비로소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청년실업#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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