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박용완]음악은 ‘작곡가의 것’이 아닌 ‘나의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니컬러스 쿡 지음·장호연 옮김 곰출판2016년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니컬러스 쿡 지음·장호연 옮김 곰출판2016년
박용완 국립극장 홍보팀장·전 월간 객석 편집장
박용완 국립극장 홍보팀장·전 월간 객석 편집장
거실 바닥에 누워 아이폰에게 물었다. “최근 나온 음악은 뭐지?” 애플뮤직 클래식 카테고리가 추천한 신보 중 ‘Room29’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패드 광고 음악으로 유명해진 작곡가이자 래퍼이며 피아니스트인 칠리 곤잘레스, 그리고 브릿 팝 밴드 ‘펄프’ 리더였던 자비스 코커, 두 사람의 협업 작품이다. 눈이 간 이유는 음반 표지에 붙은 노란 딱지 때문이다. 재즈 피아니스트와 브릿 팝 싱어송라이터의 퇴폐적이고 쓸쓸한 음악 위에 놓인 그 노란 딱지는 주류 클래식 음악계의 권위를 대변해 온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의 상징이다.

오늘날 음악의 생산, 유통, 소비 양상은 ‘권위주의의 쇠퇴’로 요약된다. 감상자가 음악에 접근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하루가 다르게 간편해지는 중이다. 음반 한 장 살 돈으로 전 세계 음악가들이 갓 만든 음악을 한 달 내내 들을 수 있다.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는 건 주체적 선택과 감상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이런 변화 속에 음반 회사가 클래식 음악의 수직적 권위를 고수하는 건 미련하고 순진한 선택이다. 영민한 음반사는 권위의 계단에서 내려와 주변 장르를 껴안으며 수평적 확장을 꾀한다.

영국인 음악학자가 쓴 이 책은 음악을 둘러싼 여러 권위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 매순간 음악에 둘러싸여 살고 있지만 권위의 문제까지 인식하며 듣는 행위가 사실 일반적이진 않다. 원서는 1998년 출판됐다. 국내에는 2004년 처음 번역됐다가 지난해 새롭게 다듬어져 나왔다. 책이 출간됐을 때와 지금의 음악산업 환경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이 책의 힘은 유효하다. 감상자에겐 더욱 그렇다.

주로 다루는 주제는 작곡가, 연주자, 감상자의 서열화다. 저자는 “제도권 교육을 통해 이어져 온 작곡하기-연주하기-감상하기의 분류가 가치의 서열화를 낳는다”고 썼다. 음악을 둘러싼 서열화와 권위주의가 탄생한 배경, 그것이 어떻게 변형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작곡가 중심의 논의가 연주(해석)와 감상의 영역으로, 음악 안에서 음악 밖으로 확장되는 현상도 소개한다.

프랑스 화가 외젠 루이 라미의 1840년 수채화 ‘베토벤 교향곡을 듣는 순간’.
사진 출처 expositions.bnf.fr
프랑스 화가 외젠 루이 라미의 1840년 수채화 ‘베토벤 교향곡을 듣는 순간’. 사진 출처 expositions.bnf.fr
7개 장(章) 중 베토벤이 홀로 한 장을 차지한다. 교회와 귀족이 요구한 음악이 아닌,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곡을 썼던 이 작곡가는 관습적 언어에서 벗어나 ‘개인’을 표현하고자 했다. 감상자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고 해석을 요구하는 음악이 그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음악을 둘러싼 서열과 권위가 어찌됐든 음악은 감상자의 개인적 경험과 사고의 대상이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요지도 이것인 듯하다. 콘서트홀에 앉아 있을 때, 스마트폰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우연히 TV 광고음악에 귀를 기울인 시간, 음악은 작곡가가 아닌 ‘나의 것’이라는 사실.
 
박용완 국립극장 홍보팀장·전 월간 객석 편집장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니컬러스 쿡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