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짜리 세포분리칩… 200원짜리 원심분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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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파괴’ 과학장비 속속 개발

과학기술 연구에는 전문적 기능을 위해 정밀하게 만들어진 장비들이 필요하다. 이런 장비나 기구는 값도 비쌀 수밖에 없다. 과학 연구가 대형 연구기관이나 대학, 기업에 집중되는 이유다.

‘값비싼’ 과학 연구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참여가 제한되고, 기술의 혜택이 널리 전파되기까지도 시간이 걸린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싸고 간편한 ‘가격 파괴’ 과학 연구에 과학자들이 속속 도전한다.

수억 원짜리 장비 없이도 원가 1000원 이하 장비로 비슷하게 작업을 수행하게 하는 식이다. 저개발국에서도 손쉽게 치명적 질병을 진단하고 어린이 과학 교육에 활용하는 등 과학의 혜택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 준다. 모든 사람을 위한 ‘과학의 민주화’가 진행 중이다.

○ 10원으로 만드는 세포 분류 장비

로널드 데이비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팀은 최근 세포 안 다양한 물질을 쉽게 분리할 수 있는 손톱 크기의 ‘랩온어칩’ 장치를 개발했다. 실험실을 작은 칩 하나에 옮겨 놓았다는 뜻이다. 1센트(약 11원)로 20분 만에 만들 수 있다.

여러 세포나 화학물질이 섞여 있는 액체를 전기적 성질에 따라 분리할 수 있다. 실험실에서 형광활성세포분류기(FACS), 자성활성세포분류기(MACS) 등 수억 원짜리 대형 장비로 하던 작업이 손톱만 한 칩에서 가능하다. 이 칩 위에 액체를 넣으면, 전기적 성질이 다른 액체들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분리된다.

연구팀은 “누구나 값싸게 과학을 접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며 “개발도상국에서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 등의 질병을 빠르고 저렴하게 진단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장난감? 원심분리기? 200원으로 혈액 분리한다

마누 프라카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페이퍼퓨지를 돌려보고 있다. 스탠퍼드대 제공
마누 프라카시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페이퍼퓨지를 돌려보고 있다. 스탠퍼드대 제공
마누 프라카시 스탠퍼드대 생물공학부 교수팀은 ‘저렴이’ 세포 분리 기술을 개발했다. 전기 없이 돌아가는 종이 원심분리기 ‘페이퍼퓨지’를 만들어 최근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발표했다.

양손으로 실을 잡아당기면 실에 매달린 종이팽이가 돌아가는 전통 장난감 실팽이를 본떠 만들었다. 여기에 혈액을 담은 튜브를 붙이면 원심력에 의해 혈액 세포가 분리된다.

5mm 지름의 페이퍼퓨지는 1분당 최고 12만5000번 회전한다. 생물학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원심분리기와 맞먹는 속도다. 수백∼수천만 원의 원심분리기 가격을 200원으로 떨어뜨린 셈이다. 페이퍼퓨지로 혈액세포를 분리하는 데 1분 30초, 여기서 말라리아 기생충을 찾는 데 15분이 걸린다.

○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과학을

프라카시 교수의 초저가 기술 개발은 페이퍼퓨지가 처음이 아니다. 2014년엔 말라리아 기생충을 관찰하거나 어린이 교육에 활용 가능한 종이 현미경 ‘폴드스코프’를 만들었다. 물체를 2000배까지 확대해 볼 수 있는 현미경을 500원에 만들 수 있다. 프라카시 교수는 “세계엔 도로나 전기 없이 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커피 한 잔보다 싼 과학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가격 파괴 과학에 관심이 커지는 추세다. 휴대용 말라리아 진단키트를 개발한 이동영 노을 대표는 “저가의 질병 진단 기술 개발 시도가 많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며 “비용을 낮추면서도 현장에서 실제 쓸 수 있는 상용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수빈 동아사이언스 기자 sbshin@donga.com
#가격 파괴 과학장비#페이퍼퓨지#폴드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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