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북한인들 장성택 처형 이후, 한국 교민들과 접촉 일제히 끊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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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피살’ 현장을 가다]

박훈상 기자
박훈상 기자
“좀 도와주시라요….”

말레이시아 교민 A 씨는 2013년 가을 쿠알라룸푸르 세이폴 국제학교를 찾았다가 학교 직원의 다급한 부탁을 받았다.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이 자녀의 입학을 원하고 있다며 통역을 요청한 것. A 씨가 직원을 따라가니 난감한 표정의 한 중년 남성이 있었다. 여권을 보자 북한 사람이었다.

그는 A 씨에게 “아들을 학교에 입학시키고 싶다. 그런데 내가 영어가 안 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간곡한 부탁에 A 씨는 입학 수속을 도왔다. A 씨는 “그때만 해도 여기 한국 교민과 북한 사람 사이에 크고 작은 교류가 있었다. 서로를 피하거나 적대시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말레이시아는 한국과 1960년, 북한과 1973년 수교했다. 특히 북한과 무비자 방문 협정을 맺는 등 국제사회에서 남다른 관계를 맺은 나라다. 22일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약 1만3000명, 북한인은 400명가량으로 알려졌다. 북한인은 대부분 떨어져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타운’으로 부를 만한 집단 거주지역이 없다. 그러다 보니 남북한 주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다.

남북한 주민들이 자주 접촉한 곳은 학교다. 자녀라는 공통점을 통해 마치 이웃처럼 지낸 경우도 있다. 일부 교민은 남북한 아이들을 자신의 차량에 함께 태우고 등하교를 시킬 정도로 가까웠다고 한다. 또 학교 행사에서 만나면 자녀의 학업 고민도 서로 나눴다. 여느 학부모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치적인 이야기나 상대의 직업은 묻지 않았다. 현지 한국 식당에도 북한 사람이 자주 드나들었고 종종 술을 마셨다는 교민도 있다. 고국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한다는 공통점이 경계의 벽을 낮춘 것이다.

상황이 돌변한 건 2013년 12월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면서다. 교민들은 “그때부터 현지 북한인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비공식 교류와 일상적 만남까지 완전히 중단됐다”고 말했다. 당시 국제학교에 다니던 북한 국적의 아이들이 일제히 사라졌다는 증언도 있다. 현지의 한 국제학교 졸업생 C 씨(19)는 “장성택이 처형됐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 날 당시 다니던 북한 학생 3명이 사라졌다. 대사관 직원 아들인 성이 ‘최’였던 친구도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민들에 따르면 북한인들은 이후 알고 지내던 한국인과 길에서 마주쳐도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지나쳤다.

이런 상황이 3년 넘게 이어지던 중 이번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터진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북한과의 무비자 방문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현지 교민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선 더욱 차가워진 북한 사람들을 일상생활에서 계속 마주쳐야 한다. 이번 김정남 암살 사건이 안겨준 테러의 공포감도 크다. 한 교민은 “김정남이 이곳에서 피살됐으니 앞으로 우리도 그렇고 북한 사람들도 먼저 손을 내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남북교민#교류#장성택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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