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김정은은 김옥의 아들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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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6일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참가한 김정은 리설주 부부의 뒤를 김옥(동그라미 안)이 멀찌감치 따르고 있다. 이 준공식은 김옥이 등장한 마지막 행사다. 동아일보DB
2012년 7월 26일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에 참가한 김정은 리설주 부부의 뒤를 김옥(동그라미 안)이 멀찌감치 따르고 있다. 이 준공식은 김옥이 등장한 마지막 행사다. 동아일보DB
김정남이냐, 김정은이냐.

김정일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정은을 선택한 것이 합리적인 듯 보인다.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정남은 장자이고 김일성도 인정한 손자이나 약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열 살 때 스위스로 유학을 보냈더니 자유분방한 청년이 돼 돌아왔다. 20대엔 여자를 뒤에 태우고 오토바이로 평양시내를 질주했다. 그것까진 부전자전이라 친다 해도 북한에 시장경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북한에선 용납되기 힘든 생각이다. 정남이 집권하면 기득권층인 간부들이 단합해 제거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걸 이겨낼 권력 의지가 정남에겐 없어 보였다.

유약한 성격 때문에 애초에 지도자감이 아닌 차남 정철은 제쳐놓고, 3남 정은은 어떤가. 나이가 어린 게 최대 약점이지만 권력 의지가 강하다. 그러면 제거되기 전에 먼저 남을 제거할 수 있고,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상관없이 제도도 필요한 대로 고쳐서 활용할 수 있다.

정남은 혈통을 따져도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그가 김정일이 딸까지 있는 유부녀를 가로채 낳은 자식이란 소문이 퍼지면 김정일은 죽어서까지 파렴치한 불륜범으로 매도될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성혜림은 유명 배우였던지라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북한에 너무 많다. 김정일은 그에 비하면 정은의 혈통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사람들은 김정은이 집권 5년이 넘도록 가계 우상화를 못하는 이유를 두고 어머니가 재일교포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살아본 나는 그 분석에 동의하기 어렵다. 재일교포 출신이 간부 임용 등에서 불이익을 받긴 하지만 무조건 숨겨야 할 치명적인 약점은 아니다. 재일교포가 그렇게 천대를 받는다면 고용희가 누구나 선망하는 만수대예술단 메인 무용수가 될 수 있었을까. 일본 출생이란 점은 북한 주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노동당 선전부가 2000년대 초반과 2012년 초반 두 차례나 고용희를 우상화하려 했던 것도 그들 딴엔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상화는 그때마다 중단됐다. 왜일까. 그동안 난 그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김정남 살해를 보면서 갑자기 ‘정은은 고용희의 아들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2010년 6월 정남은 국내 모 언론 기자와 마카오에서 만났다. 이 기자의 첫 번째 질문이 “아우님(정은)이 김옥 여사의 아드님이라는 말씀을 하고 다니신다는 얘기를 마카오에서 들었습니다”였다.

기자가 그렇게 물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두 달 동안 정남을 추적한 이 기자는 그의 마카오 지인들로부터 “정은은 김옥의 아들로 1984년생”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정남은 또 “정은을 고용희가 데려다 키웠는데 이를 아는 사람은 장성택 김경희 등 몇 명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엔 정은의 생일이 1982년으로 알려졌을 때였는데 정남은 정확한 나이를 알고 있었다.

정남이 생전에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한 일은 없다. 그러나 김옥이 정은의 생모라고 가정하면 갑자기 많은 것이 이해된다.

첫째, 정은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던 사람은 다 죽었다. 장성택과 정남은 죽었고 김경희는 매장된 상황인 만큼 곧 김정은 가계 우상화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둘째, 김정일도 정은도 왜 고용희 우상화를 꺼렸는지 이해가 될 수 있다.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 가짜 생모를 만들긴 멋쩍었을 것 같다.

셋째, 김정일이 한 여자를 오래 옆에 두는 성격이 아닌데도 왜 김옥만이 그가 사망할 때까지 30년 넘게 그의 곁에 있었는지 이해된다. 고용희조차 30년을 같이 살지 못했다.

넷째, 정은이 제일 먼저 없앨 거라 생각했던 모친의 연적 김옥이 2012년 2월 최고 훈장인 김일성훈장을 받고 그해 7월까지 공식 석상에 나타난 연유도 알 것 같다. 김옥은 정은을 후계자로 준비하는 기간 내내 김정일 옆을 지켰다.

다섯째, 정철과 정은이 성격과 체형이 왜 그리 다른지도 이해될 것 같다. 정철은 감수성도 예민하고 잔인할 것 같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먹어도 살찔 체질 같진 않다.

끝으로 정남이 왜 굳이 죽었어야 했는지도 알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출생의 비밀은 메가톤급 폭탄이다. 그의 입에서 황당한 족보 이야기가 나오면 북한에 소문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정은은 얼굴 들고 다니기 어려울 것이다. 정은은 돈 떨어진 정남이 망명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들은 것은 아닐까.

가설의 정답을 알고 있는 정남은 죽었다. 그러나 어쩐지 비망록을 남겼을 것 같다. 그의 아들 김한솔도 이런 비밀을 전해 들었을지 모른다. 한솔이 말하면 사람들은 믿을 것이다. 그래서 한솔의 목숨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비망록이 공개되든가, 또는 한솔이 망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김정남#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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