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극물 수사 30년… 김정남 테러 물질 나도 궁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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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성연구 권위자 정희선 원장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이 21일 대전 유성구 충남대 대덕캠퍼스 법화학실 실험실에서 시료분석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정 원장은 “독극물을 분석장비에 넣고 검출 가능한 여러 조건을 설정해 결과가 나올 때까까지 돌려본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라고 설명했다. 충남대 제공
정희선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이 21일 대전 유성구 충남대 대덕캠퍼스 법화학실 실험실에서 시료분석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정 원장은 “독극물을 분석장비에 넣고 검출 가능한 여러 조건을 설정해 결과가 나올 때까까지 돌려본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라고 설명했다. 충남대 제공
“생소한 물질이거나 의외의 물질일 경우 독성 검출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1997년 남성 듀오 ‘듀스’ 멤버였던 김성재 씨 변사사건도 사인(死因)이 동물 마취제라는 생각지 못한 물질이라 검출에 열흘이나 걸렸습니다.”

국내 독성연구 최고 권위자인 정희선 충남대 분석기술과학대학원장(62)은 김정남의 암살이 북한의 소행이 맞다면 독극물의 정체는 열흘은 넘겨야 밝혀질 사안이라고 말했다.

1987년 광신도 32명이 집단 변사체로 발견된 ‘오대양 사건’, 1990년대 초 고등학생 등 60여 명이 사망한 진해거담제 중독 사건 등이 모두 정 원장의 손을 거친 사건들이다. 그는 1978년 처음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입사해 30년간 독사 사건을 전담한 과학수사계 대모다. 남편 유영찬 국과수 소장(1999∼2002년)에 이어 여성 최초이자 부부 최초로 국과수 소장(2008∼2012년)을 지냈고, 현재 국제법독성학회(TIAFT) 회장을 맡고 있다. 동아일보 독자들에게는 ‘신문과 놀자’ CSI범죄수사대 기고로 친숙하다.

1974년 숙명여대 약대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정 원장은 안정적인 약사의 길을 꿈꿨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 때 당시 국과수 소장의 특강을 듣고 흥미진진한 독극물 수사의 세계에 푹 빠졌다. 졸업을 앞두고 국과수 이화학과 약무사보(補) 자리가 하나 났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지원했다. 부모님은 7남매 중 막내딸이 험한 일에 뛰어든다는 생각에 만류했지만, 정 원장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기대에 벅찬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일과는 고됐다. 매일 수십 개의 소변을 분석하고, 위(胃) 내용물을 헤집어야 했다. 말이 좋아 위 내용물이지, ‘토사물’이었다. 농약을 먹고 사망한 경우에는 그 냄새가 더욱 지독했다. “영화 ‘투캅스’ 형사들처럼 찍어 먹어보진 않지만 이제는 자연스레 냄새를 맡습니다. 청산가리를 먹고 사망한 경우에는 독특한 냄새가 나거든요.”

정 원장은 김정남 암살 사건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그는 과거 북한 공작원의 암살과 자살 사건 수사에도 많이 참여했다. 김정남 암살 독극물 후보로 거론된 네오스티그민도 검출해본 적이 있다. 이런 맹독성 물질의 경우 극미량이 투여되기 때문에 검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정 원장은 말한다.

보툴리누스톡신이나 테트로도톡신 같은 생물독(살아있는 생물체로부터 유래된 독)도 혈액 안에서 구분해 내기 어렵고 변질돼 여러 번에 걸쳐 검출 장비를 돌려야 한다고 했다. 김정남 부검 결과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정 원장이 추측하는 바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사는 뭘까. 그는 오대양 사건을 꼽았다. 정 원장은 시신들의 평온한 얼굴을 볼 때 독사라 확신했지만, 당시 구축된 독극물 데이터베이스를 모두 적용해 봐도 딱 맞는 독극물을 찾을 수 없어 결국 미제로 남았다. “유가족들에게 영원히 미안한 마음이 남습니다. 아마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 수사에 참여하시는 연구원들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하루빨리 독극물의 정체가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독성연구 권위자#정희선#독극물#김정남 독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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