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 신인작가에 문호 넓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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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산하기관 건물 조형물… ‘공모대행제’ 도입해 투명 선정
건축비 0.7% 미술품 설치 규정… 구색맞추기 급급… 브로커 판쳐

2002년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설치된 미국 작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철제 작품 ‘망치질하는 사람(해머링맨)’. 대중에게 예술을 좀 더 가깝게 느끼게 하는 공공미술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2002년 서울 종로구 신문로 흥국생명 빌딩 앞에 설치된 미국 작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철제 작품 ‘망치질하는 사람(해머링맨)’. 대중에게 예술을 좀 더 가깝게 느끼게 하는 공공미술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도심 속 고층빌딩 사이로 퇴근길에 만난 멋진 예술작품은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을 적신다. 미술관이라는 문턱을 넘기 힘든 일반인들에게 공공미술이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런 취지로 1995년 시작된 게 문화예술진흥법 건축물미술작품제도다. 연면적 1만 m² 이상 건물을 신·증축할 때 건축물 규모별로 최고 0.7%의 비용을 의무적으로 회화 조각 등 미술품 설치에 사용해야 한다. 2000년 기존 건축비용의 1%에서 0.7%로 기준이 완화됐다. 큰 건물 앞에 놓인 조형물이나 건물 로비에 걸린 회화가 대부분 이 기준 때문에 만들어졌다. 서울에만 현재 3517개 미술작품이 있다.

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작품도 적지 않다. 건물 구석에 설치되거나 예술적 가치를 느끼기 어려운 경우도 꽤 있다. 변태순 서울시 디자인정책과장은 “의무적으로 건물마다 한 개씩 설치하다 보니 빽빽한 도심에서는 감상할 여건이 되지 않고 오히려 보행에 방해가 될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가들도 현재 공공미술 시장에 문제가 많다고 느낀다.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는 “작가 층이 너무 제한적이고 신인 작가가 여기에 진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건축주가 미술을 직접 알기란 어렵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컨설팅회사와 갤러리가 중개업체 역할을 한다. ‘중개회사에 커미션 비용으로 최소 30∼50%는 떼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총비용의 0.7%라는 기준을 맞추기 위해 건축주와 브로커가 짜고 가짜 영수증을 발급해 정부로부터 준공을 받기도 한다. 좋은 작품을 설치하기보다는 ‘구색 맞추기’로 악용하는 건축주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2011년 건축주가 문화예술진흥기금을 내면 현장에 설치한 것과 같은 것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기금으로 내는 경우는 미미하다. 당초 취지는 건물 앞에 설치할 여건이 되지 않을 경우 돈을 모아서 좋은 작품을 접근성 좋은 곳에 만들자는 뜻이다. 지난해 서울시내 건물에서 공공미술에 쓰인 돈이 322억 원인데, 기금에 들어간 돈은 8억 원에 불과했다. 실제로 모인 기금이 공공미술에 쓰인 적도 없다. 2011년 이후 전국 기준 84억 원(누적)이 출연됐는데 문화관광체육부에서 공공미술 항목으로 쓴 건 ‘0건’이다.

지난해 8월 소병훈 국회의원 등 14명은 현재 문체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에서 관리하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변 과장은 “지자체가 갖고 있는 토지를 활용해 좋은 작품을 배치하고 작품의 사후 관리까지 지자체가 맡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또 올해부터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이 짓는 건물에 ‘공모대행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SH공사나 DMC가 미술작품을 선정할 때 브로커가 아닌 서울시 전문가자문회의를 통해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정하겠다는 것. 신인 작가에게도 개방의 문이 좀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 교수는 “시민이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공공미술 설치제도도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공공미술#신인작가#공모대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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