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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河川 막아 농지 일구자… 조선에 전염병이 돌았다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2-18 03:00:00 수정 2017-02-1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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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생태환경사/김동진 지음/364쪽·2만 원·푸른역사

19세기 화원 양기훈이 그린 ‘밭갈이’(오른쪽 사진). 조선시대 토지 개간이 확대되면서 사육하는 소의 개체수가 늘어 소에서 인간으로 전염된 홍역과 천연두가 크게 유행했다. 왼쪽사진은 조선 후기 문신 구인후의 초상화로 천연두를 앓은 흔적(곰보)이 뚜렷하다. 푸른역사 제공
지난해 여름 제주도 곶자왈을 찾았을 때 ‘숨골’을 발견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였는데 바위틈 작은 구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숲속 에어컨 같은 느낌이랄까. 나중에 알고 보니 숨골은 제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생태환경을 제공했다. 예부터 숨골은 홍수 때 물이 빠지는 통로인 동시에 가뭄 땐 식수원으로 기능해 왔다. 숨골이 없었다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생존 자체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조선시대 자연생태가 인간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당대 사대부 문집 등 다양한 문헌에 기록된 생태계의 흔적을 추적했다. 나는 생태계가 사람들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제주 숨골에서의 경험을 이 책에서 더 깊이 있게 깨칠 수 있었다.

저자는 생태계 변화는 필연 자원 이용 행태를 바꾸므로 삶의 양태도 변화시킨다고 설명한다. 문익점의 목화씨 도입이 우리나라 농촌 경관을 바꾸고 나아가 왜, 여진과의 무역에서 비교우위로 이어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늘 자연을 존중하고 인위적 요소를 배격한 걸로 알려진 조선시대 이미지도 이 책을 보면 깨진다. 조선은 개국 초 ‘산림천택여민공지(山林川澤與民共之·산림과 하천의 이익을 백성과 함께 누리겠다)’를 내걸고 적극적인 토지 개간을 시도했다. 이는 흐르는 하천과 못을 막아 둑을 쌓고 물을 대는 것으로, 당시로선 엄청난 자연환경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하천 주변 상습 침수지(‘무너미’)를 개간하는 건 미국 서부개척 시대에 맞먹는 위험을 무릅쓴 행위였다. 장마에 따른 홍수와 야생동물의 습격 등에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고려시대 각종 기록을 통해 들여다본 한반도의 생태·인문 환경이 지금과 사뭇 달랐다는 점도 흥미롭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은 설화가 많이 남아 있는 데서 엿보이듯,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골짜기와 평지엔 호랑이, 멧돼지 등 맹수가 들끓었다. 이 시대 장거리 여행자는 맹수의 습격을 항시 대비해야 할 정도였다.

개발에 대한 자연의 반격에서 조선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농지 개간이 적극 이뤄진 15세기 이후 조선에서는 이질 같은 전염병이 급증했다. 국왕이 이질에 걸려 국정을 일시 중단하거나 중신들이 이질을 사유로 사임한 사례가 실록에 자주 등장한다. 벼농사 확대와 이질 발병의 상관관계는 무얼까. 논에 장기간 고인 물이 사람들의 인분으로 오염되자, 수인성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들이 급속히 번식했다는 것이다. 당시 식량 증산으로 늘어난 인구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동물의 가축화에 따른 조선시대 홍역, 천연두 유행도 비슷한 맥락이다. 인구 증가로 사육하는 소의 마릿수가 늘면서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인 홍역, 천연두 감염도 급증했다. 특히 17세기 후반 중국 청나라의 대규모 군사원정은 미생물의 확산과 변이를 촉진시켜 조선반도의 홍역 대유행에 한몫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 군집의 변화는 인간의 삶을 바꾸었고 역사를 변화시켰다”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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