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양종구]한국 스포츠, 비정상의 정상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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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던 지난해 10월 열린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서 이기흥 전 대한수영연맹 회장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김종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농단한 한국 스포츠를 그나마 재정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얼마 뒤 김 차관은 ‘최순실 국정 농단’의 핵심 인물로 결국 구속 기소됐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출신 김종은 ‘스포츠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웠다. 재력이 있다고 소문이 난 그는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주로 어울렸다. 공무원들과 골프도 자주 쳤다. 한양대 대학원에 공무원을 많이 받아들였다. 학위 과정을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활용했다.

 인적 네트워크의 힘은 셌다. 2010년 체육인재육성재단이 3년간 15억 원의 기금을 지원하는 글로벌 체육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맡을 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서울대로 내정된 것을 한양대로 돌려세웠다. 당시 김종이 관리하던 문체부 고위 관계자와의 끈을 활용했던 것이다. 서울대의 반발로 재심까지 갔지만 문체부는 다시 한양대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10월 문체부 차관이 된 김종은 체육계 비리 척결에 나섰다. ‘4대악 척결’을 내세워 각 스포츠단체를 털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체육 단체장 옷 벗기기는 예사였고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제거했다. 체육계의 반발도 거셌지만 막무가내인 그를 저지할 수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소문에 일부 체육인은 “소나기는 일단 피해야 한다”며 머리를 수그렸다.

 김종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체육인재육성재단을 하루아침에 없앴다. 스포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34년 넘게 엘리트 스포츠의 후원군 역할을 한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을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바꿨다. 문체부에서 그의 말을 듣지 않아 좌천된 공무원이 한둘이 아니다. 최순실 씨를 돕기 위해 만든 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시키는 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정준희 서기관을 좌천시켰고 늘품체조에 반대한 강대금 과장도 날렸다. 문체부는 요즘 김종의 ‘잔재’를 없애느라 고생하고 있다.

 검찰과 특검 조사 결과 김종이 이렇게 날뛴 이유가 정치적인 야심으로 최 씨 일가를 돕기 위해서였다는 게 명확해졌다. 체육인들이 김종에게 실망한 가장 큰 이유다. ‘비정상의 정상화’란 그럴듯한 명목을 앞세워 한국 스포츠를 완전히 유린한 것이다.

 이 회장은 김종의 독선에 맞선 인물이다. 김종의 온갖 방해 공작을 뚫고 사상 첫 엘리트와 사회체육을 통합한 대한체육회 회장에 당선됐다. 그는 2000년 대한근대5종 부회장으로 체육계에 몸담은 뒤 줄곧 스포츠 현장에 있었다. 물론 수영연맹 회장 시절 전무이사 등의 비리를 관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물러나기도 했다. 엘리트와 사회체육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적대적인 체육인이 많이 늘기도 했다. 하지만 최소한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으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당분간 문체부는 정치 바람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김종이 미는 ‘허수아비’가 대한체육회 회장에 당선됐다면 한국 스포츠도 함께 흔들렸을 게 뻔하다. 이 회장 당선으로 최소한 한국 스포츠의 본산은 흔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한국은 1년여 뒤 지구촌 겨울 축제인 평창 겨울올림픽을 개최한다. 김종으로 인한 ‘비정상’의 정상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최순실 게이트#김종#조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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