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한민국이 묻는다’ 펴낸 문재인에게 묻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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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어제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군부독재가 연장되는 바람에 청산돼야 할 박정희 체제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강고하게 지배한다”며 ‘구체제 적폐의 대청산’을 주장했다.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서 집권 청사진을 담은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다. 두 번째 시민혁명인 6월 항쟁 때 민주정부를 선출했다면 군부독재 세력과 그 뿌리인 친일 청산도 가능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일과 독재, 사이비 보수 세력’을 청산하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문 전 대표의 이런 역사인식은 실망스럽다. 문 전 대표 측이 “완전히 새로운 나라를 목표로 국가 비전을 밝힌 책”이라고 했지만, 국가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진보 대 보수’ 프레임 속에 네 편, 내 편부터 가르고 있다. 따지고 보면 6월 항쟁 이후 군 출신 노태우 대통령 당선을 낳은 것은 양김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세력의 분열 탓이 컸다. 이후 김영삼의 민주화 세력도 3당 합당으로 집권 세력에 합류했다. 그런데도 ‘친일과 독재, 사이비 보수 세력’이란 이름 아래 모두 싸잡아 청산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진보좌파 진영만 빼곤 모두 청산 대상이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단선적이고 이분법적 시각이야말로 역사인식의 협량(狹量)을 보여준다. 특히 문 전 대표가 대담집에서 자신과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공격에는 “정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며 “다만 우리 진보진영 내부의 비판이나 진보언론의 비판에는 굉장히 아파하고 귀를 기울였다”고 하는 데선 눈을 의심할 정도다. 보수진영, 보수언론에서 나오는 비판이라면 어떤 얘기도 듣지 않겠다는 일방통행 선언으로도 들린다.

 그러면서도 문 전 대표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국민 편 가르기였다”면서 “이제 혐오의 정치를 끝내고 화쟁(和諍)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화쟁이라면 다양한 종파와 이론적 대립을 소통시키는 통합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네 탓, 과거 탓’뿐인 그의 인식이 과연 화쟁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문 전 대표는 사실상 대선 공약으로 과학기술부 부활과 중소기업부 신설, 노인·청년·저출산 전담기구 설치 같은 ‘큰 정부’를 지향하면서 부동산 보유세 인상, 주식양도차익 과세 같은 ‘부자 과세’를 재원 확보 방안으로 제시했다. 남북 관계나 국가 안보에 대한 시각도 여전히 노무현 정부 때와 다름없다. 압박보다는 대화에 방점을 둔 대북 정책을 제시하는가 하면 군 복무 기간에 대해선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18개월 단축’을 넘어 “1년까지 단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그분이 (대통령) 되는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연장”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야말로 ‘노무현 정권 시즌2’가 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이 묻는다#문재인#박정희#진보 대 보수#대선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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