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54>건너지 못한 다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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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예술가 그룹’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예술가 그룹’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는 예술적 자존감이 남다른 화가였습니다. 스스로를 독일 미술의 거장인 뒤러의 계승자라고 확신할 정도였지요.

 화가는 미술단체, 다리파와 함께 곧잘 언급됩니다. 다리파는 1905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건축 전공자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미술단체였어요. 단체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다리파는 전통과 진보, 과거와 미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를 이어주는 중간 지점에 자신들의 예술을 위치시키고자 했지요.

 다리파가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단체전과 순회전을 꾸준히 준비한 몇몇 회원이 헌신한 덕분이었습니다. 화가와 함께 다리파를 견인한 헤켈과 슈미트로틀루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 사람은 효율적인 단체 운영을 위해 각자 성향에 맞춰 역할도 나누었습니다. 고집 센 화가가 단체 홍보와 전시 기획을 맡았지요. 책임감 강하고, 과묵했던 나머지 두 사람이 각각 회원 관리와 문서 작성을 담당했어요.

 세 사람은 ‘미술가 그룹’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림 전반에 긴장이 가득합니다. 그림 왼편에 서 있는 사람이 화가입니다. 목판화로 제작한 다리파 연대기를 들고 있군요. 오른편 안경을 쓴 턱수염 신사가 슈미트로틀루프이지요.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기세입니다. 아무래도 자기주장 강한 화가가 갈등을 유발한 것 같습니다. 회원 한 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앉아 있고, 그림 중앙 헤켈이 화가를 팔꿈치로 제지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1913년 다리파 해체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1926년경 화가는 기억을 되살려 10여 년 전 그날을 생생하게 형상화했어요. 화가는 왜 뒤늦게 해묵은 과거를 그린 것일까요. 그것도 미술단체 8년 중 성취 무대가 아닌 실패 현장을 소재로 삼았을까요. 그즈음 화가는 옛 동료들로부터 다리파 재결성을 제안받았습니다. “다리파는 이미 과거 미술이다.” 화가는 미술단체 최후의 순간을 그려 제안을 거절했지요.

 다리파 흔적 지우기와 엄격한 자기 검열을 병행했던 화가는 뜻밖의 사건으로 절망에 휩싸였습니다. 1937년 나치 독일은 정치적 잣대로 좋은 미술과 나쁜 미술을 나누고 각각에 특혜와 배제를 남발했지요. 화가는 퇴폐 미술가로 분류돼 불이익을 당하다 1938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화가가 경계해야 했던 것은 고루한 예술을 생산하는 관행적 틀만이 아니었습니다. 시대의 광기와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다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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