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호텔 코스요리로 ‘우아한 혼밥’… VIP석 ‘화려한 혼공’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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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족의 진화 ‘럭셔리하게’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등 미래에 대한 투자보단 현재에 집중한 소비 행태를 보이는 럭셔리 싱글족이 늘어나고 있다. 여행, 수집 등 자신만의 취미나 반려동물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들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주목받고 있다. 인터파크투어 제공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등 미래에 대한 투자보단 현재에 집중한 소비 행태를 보이는 럭셔리 싱글족이 늘어나고 있다. 여행, 수집 등 자신만의 취미나 반려동물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이들이 새로운 소비 주체로 주목받고 있다. 인터파크투어 제공
 혼자 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안 씨(28)는 호텔 코스 요리로 혼밥(혼자 밥 먹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스테이크가 나오는 코스 요리는 1인당 12만 원 정도. 한 끼 식사에 쓰는 돈으로는 적지 않지만 이 씨는 “나를 위해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다. 주말이면 15만 원짜리 VIP 티켓을 사서 혼자 뮤지컬을 본다. 기분 전환을 위해 미용실에 가거나 네일 아트, 메이크업 서비스도 자주 받는다. 이 씨는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카카오택시 블랙’의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혼자 살아도 삶의 품격을 따지는 ‘럭셔리 싱글족’이 늘고 있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값싼 살림살이를 임시로 마련해 지내는 암울한 자취생은 이제 옛말이다. 결혼, 임신, 육아에 목돈을 지출할 필요가 없는 이들은 자기만족을 위한 사치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특히 이 씨처럼 씀씀이가 큰 고소득 싱글족이 그렇다.

 앞으로 1인 가구 소비생활은 민간 소비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연구원은 1인 가구 소비지출 규모가 지난해 기준 86조 원에서 2020년에는 120조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2030년에는 194조 원으로 늘어나 4인 가구 지출(178조 원)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 가구 비중으로만 따져 보면 지난해 기준 1인 가구(27.2%)는 이미 4인 가구(18.8%)를 훨씬 앞섰다.

“나 혼자 품격 있게 산다”

 럭셔리 싱글족의 삶은 다양한 신조어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이들은 ‘욜로(YOLO) 라이프’의 정석을 따른다. ‘욜로’는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가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다(You Only Live Once)’라는 영어 문장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조합했다.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등 미래에 대한 투자보단 현재에 집중한 소비 행태를 가리킨다.

 혼자를 자처하는 ‘얼로너(aloner·홀로 사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라는 말도 이들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친구, 가족이 없어서 혼술(혼자 술 마시기)이나 혼영(혼자 영화 보기)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혼자 있는 게 좋아서 자발적 고립을 택한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히키코모리’와는 다르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소비는 철저히 ‘나’라는 주제에 맞춰진다.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야 행복할 것인가가 소비의 기준이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1인 가구는 소비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가족이라는 준거집단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쾌락 지향적 소비를 한다”고 분석했다. 또 “도전적 소비 성향도 있기 때문에 신상품이 나오면 쉽게 돈을 쓴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주로 지갑을 여는 분야는 집 안 인테리어, 취미생활, 여행, 반려동물 등이다.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특정 관심 분야에 ‘덕질(오덕후+질)’을 하기도 한다.

고급 그릇 수집이 취미인 최상욱 씨는 대표적인 ‘얼로너(aloner·홀로 사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최상욱 씨 제공
고급 그릇 수집이 취미인 최상욱 씨는 대표적인 ‘얼로너(aloner·홀로 사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최상욱 씨 제공
 브랜드 컨설팅 회사 엑스에스엑스엘(xsxl) 대표인 최상욱 씨(33)는 ‘욜로 라이프’를 사는 ‘얼로너’다. 최 씨의 취미는 수집한 그릇, 조명, 향초로 분위기를 내고 우아한 티타임을 즐기는 것. 최근 10여 년간 그릇 수집에 1000만 원 가까이 지출했다. 로얄코펜하겐 같은 고가 수입 브랜드에서 나오는 한정판 제품을 주로 모은다. 수집한 찻잔으로 차를 마실 때 집 안 분위기를 신경 쓰게 되면서 조명, 향초도 모으게 됐다. 차를 마시는 시간에는 조말론, 딥디크 같은 고가 향수 브랜드에서 나오는 10만 원대 안팎의 향초를 태운다.

 최 씨는 “20대에는 클럽에 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걸 즐겼지만 이제는 혼자 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말했다. 또 “차 마시는 한 시간을 즐길 뿐, 여기에 쓰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덧붙였다.

 혼자 지내는 집 안 환경을 꾸미는 데 열중하는 이들은 인테리어, 가구에도 목돈을 들인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건 적건 간에 ‘제대로 갖추고 살자’는 인식으로 고가 살림살이에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변호사 김수연 씨(31)는 올해 침대, 1인용 리클라이너(안락의자), 홈시어터, 냉장고 등을 사는 데 1000만 원 가까이 썼다. 주변에선 “결혼 전에 왜 비싼 살림살이를 사들이느냐”고 말렸다. 하지만 김 씨는 “집에서 쉬는 시간을 더 편안히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지출을 결심했다.

덩달아 호사를 누리는 반려동물

 럭셔리 싱글족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돈을 쓰는 분야도 있다. 함께 사는 반려동물이다. 배우자나 자녀에게 돈 쓸 일이 없는 싱글족의 경제적 여유는 반려동물이 함께 누린다. 비싼 간식과 애견·애묘용품은 기본이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개캉스(개+바캉스)’를 떠난다. 한 달에 한 차례 주치의에게 검진도 받는다. 1인 가구는 ‘좋은 것만 주고 싶다’는 한 TV 광고 카피처럼 가족으로 여기는 반려동물에게 애정과 금전을 쏟는다.

 프리랜서 성우 조현정 씨(38)에게 반려견 ‘방울이’는 자식과 같다. 먹고, 자고, 일할 때도 동행한다. 조 씨는 방울이와 함께 여행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특히 제주도를 자주 찾는다. 올해 아홉 살인 방울이는 새끼 때부터 조 씨와 함께 여행을 다닌 덕에 비행기 타는 매너가 아주 좋다. 5월에는 사진작가를 고용해 제주도에서 방울이와 커플 스냅사진도 찍었다.

 방울이는 매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주치의를 만나러 동물병원 나들이를 한다. 나이가 들면서 관절과 눈 건강이 나빠져 글루코사민과 안약 처방을 받는다. 아토피가 있어 당근, 브로콜리 등 채소로 만든 수제 간식만 먹는다. 조 씨는 “방울이를 위해 병원, 간식 비용 등으로 한 달에 70만 원까지 써봤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개인사업까지 이어진 경우도 있다. 반려견 ‘애플이’와 어떻게 하면 함께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디자이너 양태오 씨(36)가 그런 경우다. 양 씨는 애플이 체취가 집 안에 배는 것이 고민이었다. 개 냄새를 없애기 위해 1년 내내 집 안에 아로마 향초를 피웠다. 하지만 향초가 개의 후각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주변의 만류에 고민이 더해졌다.

 양 씨는 애플이를 위해 개가 좋아하는 향기가 무엇인지 공부했다. 박하의 일종인 마조람 향기가 개의 심신을 안정시켜 짖거나 소란을 피우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향을 기본으로 반려동물 전용 향초를 만들었다. 이어 애견 전용 고급 소파(18만 원), 방석(15만 원), 장난감 뼈다귀(2만 원) 등을 내놨다. 양 씨는 “애견과 사람이 한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사업까지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치열해지는 ‘1코노미’ 시장

 1인 가구를 위한 프리미엄 가전, 가구, 여행 상품을 내놓는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해지는 추세다. 금액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 돈을 쓰는 이들을 잡기 위해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싱글족 마케팅이 펼쳐지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여행업계다. ‘여행 덕후’ 싱글족들이 여행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 프리랜서 영어 강사인 강하나 씨(39)의 경우 두세 달에 한 번꼴로 해외여행을 떠난다. 5성급 호텔을 이용할 때가 많다.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땐 비즈니스 항공석을 예매한다. 그는 “여행에 수입의 3분의 1 이상을 쓰고 있다”며 “아등바등 돈을 저축하며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강 씨 같은 큰손을 잡기 위해 인터파크투어는 혼자 떠나도 여행이 심심하지 않도록 구성된 테마 상품 ‘먹고 찍고’를 내놨다. 이 상품을 예약하는 사람 중 51%는 나 홀로 여행족이다. 일본 도쿄 건담 투어, 고양이마을 투어, 스위스 트레인 투어 등 특정 취향을 고려한 여행상품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다. 

 고가 여행상품도 인기다. 지난해 하나투어가 운영하는 프리미엄 여행 브랜드인 ‘제우스’ 상품을 혼자 예약한 경우는 전년에 비해 38% 늘었다.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을 이용하고 5성급 호텔에서 머문다. 고가 패키지 상품의 경우 1400만 원짜리도 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이 늘면서 수요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테리어·가전 업계도 1인 가구 맞춤형 제품을 내놓느라 바쁘다. 제조유통일괄형(SPA) 패션 브랜드인 H&M, 자라 등은 경쟁적으로 라이프스타일숍 브랜드를 선보였다. 신세계인터내셔널 ‘자주’, 롯데백화점 ‘무지’, 이랜드 ‘버터’도 경쟁에 가세했다. 한샘, 리바트 등 가구업체도 1인 가구용 침대, 식탁, 소파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소형 냉장고 ‘슬림 스타일’ 등을 비롯해 소형 TV인 ‘세리프TV’ 등 1인 가구가 사용할 만한 소형 가전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싱글족의 라이프스타일이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결혼으로 2인 가정이 되더라도 외식, 취미생활 등 소비 패턴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1, 2인 가구 모두의 주요 관심사인 프리미엄 레스토랑, 여행, 여가 관련 기업들은 이들을 제1 고객으로 놓고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고야기자 best@donga.com
#싱글족#1인 가구#욜로 라이프#yolo#얼로너#alo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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