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상호]‘트럼프 동맹시대’ 준비돼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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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미국 주류 언론과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대선 승리 예측에 실패한 것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실책이 컸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보수 성향의 미 외교안보 싱크탱크 관계자가 건넨 말이다.

 심리학에서 ‘확증편향’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과 일치하는 정보만 수용하는 현상을 말한다. 개인이나 집단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오류에 빠진다는 얘기다. 객관적 사실(fact)도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듣기 거북하면 무시하기 일쑤다. 주관이 깊숙이 개입된 ‘선택적 지각’은 사안의 본질을 흐려서 일을 그르치게 만들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 주요 언론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측이 대선 판세를 완전히 오판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한국이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기 바란다”고 조언했다. 막연한 기대와 낙관으로 ‘트럼프 동맹시대’를 맞이하면 낭패를 볼 거라는 경고로 들렸다.

 최근 언론 보도와 정부 태도, 전문가 분석 등을 보면서 우려가 앞선다. 트럼프 당선인 측이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대목에 과도하게 주목하는 모습 때문이다. 지난달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뉴욕을 방문한 조태용 대통령국가안보실 1차장 등 한국 대표단에게 한미 동맹을 ‘핵심 동맹(vital alliance)’이라고 언급한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게 대표적 사례다. 외교·국방 당국자들은 ‘트럼프 불확실성’이 해소된 듯 안도하는 기류마저 감지된다. 한술 더 떠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딴사람’이 될 것처럼 예측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트럼프가 유세 기간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맹비난하면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전액 부담하라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으로 현실정치에 들어가면 한발 물러설 것이라는 식이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이런 기류가 대미전략의 확증편향을 자초하는 단견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수사적 동맹’과 ‘현실적 동맹’을 동일시하는 착각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은 정파를 초월해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철저히 고려해 동맹 관계를 조정해 왔다. 한국도 그 영향권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미국이 확고한 동맹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주한미군 감축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첨예한 현안을 관철시킨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명분과 실리를 다 챙기는 ‘동맹 관리 전략’인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같은 방식으로 한국에 더 많은 안보 책임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동맹이 중요하지만 셈은 정확히 하자”면서 ‘립 서비스’와 함께 ‘안보 청구서’(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이양 등)를 들이밀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현실적 상황도 우려스럽다.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와 국방 예산 삭감, 동맹국 퍼주기 비난 여론 등 어느 하나 한국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은 없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등 경제 분야에서 촉발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불똥이 외교안보 분야로 옮아 붙는 건 시간문제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대한(對韓) 방위공약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전략을 냉철히 분석해서 안보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정부 당국이 보기 싫고, 듣기 거북하더라도 현실을 직시해 현명하게 판단할 때이다. 대미 동맹 전략의 확증편향으로 초래될 시행착오를 감수하기엔 한국이 처한 안보 상황이 너무 위태롭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트럼프#한미 동맹#주한미군 방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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