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예측불허 공포의 사회… 당신도 악인이 될 수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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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세기/백민석 지음/351쪽·1만3000원/문학과지성사

 백민석 씨는 10년여간 잠적했다. 독한 상상력으로 1990년대 큰 주목을 받았던 이 작가는 갑작스럽게 2000년대 들어 돌연 글쓰기를 중단했다. 3년 전 복귀작이었던 소설집 ‘혀끝의 남자’에 이어 새 장편 ‘공포의 세기’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소설의 강도는 초반부터 세다. 백 씨는 주인공 ‘모비’의 악함을 잔혹하게 보여준다. 자신이 근무하던 레스토랑에 간 모비는 난간에 왁스칠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해고한 레스토랑 사장에게 칼을 휘두르고 피 흘리는 사장에게서 사과를 받아낸다.

 작가는 잔인한 모비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한편, ‘경’ ‘심’ ‘령’ ‘효’ ‘수’라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모비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결혼하고, 모비의 어머니는 아들을 키워가면서 종교에 집착한다. 자폐아인 모비를 위해 어머니는 강박적으로 성경을 읽어주지만, 모비는 강도 행각을 벌이는 소년이 된다. 작가는 평범한 듯 보였던 ‘경’ ‘심’ 등 5명도 모비와 같은 악인이 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백 씨는 이들로 인해 사회가 분노와 공포로 어찌할 바 모르는 모습을 묘사한다. 대한민국이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분노와 공포에 휩싸인 이때에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실체 없는 음모일 수 있었다”는 소설의 표현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소설이 주는 공포가 판타지에 가깝지만 정작 작가는 “지금은 내가 법도 잘 지키고 착하고 누구에게나 해코지할 사람이 아니지만 어떤 계기가 주어지거나 어떤 상황에 처하면 그 악인이 될 수도 있지 않나”라고 말한다. 실제 사회에 대한 비유라는 얘기다. “불가해하고 돌발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이성이나 과학 같은 근대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제목도 ‘공포의 세기’로 한 것 같다”고 작가는 털어놓는다. 모비처럼 겉으로 드러나게 잔악하지는 않더라도, 현대 사회에선 언제든 ‘괴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공포의 세기#백민석#공포#혀끝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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