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노무현의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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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 불만이 있다. 나도 불만이 있다. 그런데 인생이 불만스러운 이유를 남 탓으로만 돌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한 발짝 더 나가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탓이라고 돌리면 앞이 안 보인다. 그는 ‘당신의 삶이 힘든 것은 반칙과 특권이 판치는 대한민국 탓’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그때부터 국가가 성립하고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질서의식과 권위체계가 바닥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회고록 파문도 盧의 유산

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돌아보면 공권력이 시민의 발아래 깔린 촛불시위부터 오늘의 백남기 부검 영장 집행 거부 사태까지, ‘기존 질서는 얼마든 무시해도 좋다’는 노무현의 유산이라고 나는 본다. 대선 후보 시절 그가 “반미주의자면 어떠냐”고 들이받은 것은 차라리 신선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에도 ‘큰 정부 맞다. 큰 정부면 어떠냐’ ‘코드인사면 어때’라며 정당한 비판도 정면으로 맞받았다. 정당한 비판이, ‘팩트의 힘’이 먹히지 않는 작금의 세태는 노무현의 또 다른 유산이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 존망이 걸린 대북정책에서도 ‘북한으로서 핵은 자위수단’이라느니, ‘북한은 테러를 자행하거나 지원한 일이 없다’ 같은 황당한 북한식 주장을 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으로 촉발된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대북 결재’ 의혹도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되고도 반미친북 운동권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무현의 산물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논란의 핵심인 ‘결의안 기권 전에 북의 의견을 물었느냐’에 대해선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다. 친노(親盧) 인사들과의 대책회의에서 나온 ‘역할 분담’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러니 아직도 문 전 대표를 두고 ‘노무현의 아류(亞流)’라는 말이 가시질 않는다.

 정치권에는 ‘문재인의 딜레마’란 얘기가 있다. ‘문재인이 본선(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려면 노무현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을 극복하면 예선(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대선을 돌아보면 본선 경쟁력이 결국 당내 경선의 당락을 갈랐다. 문 전 대표가 야권 유력 대선주자답게 ‘친노의 고용사장’ 소리나 들었던 2012년 대선의 구각(舊殼)을 깨려면 송민순 회고록 파문에서도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 자리는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단적으로 그는 세상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대통령의 몫이 아니다. 시대의 정신적 스승이나 종교 지도자의 몫에 가깝다….” 2012년 7월 내가 쓴 칼럼의 서두다.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은 2009년 5월 부엉이바위 아래로 몸을 던짐으로써 ‘종교 지도자’로 부활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실토했다. 그럼에도 ‘노무현의 실패’를 말하는 것은 금기나 다름없다. 노 전 대통령 가족이 받은 수십억 원의 금품은 환수되지 못했다. 그래도 감히 그걸 입에 올릴 분위기가 아니다.

文, 자기 목소리 내야

 인간 노무현의 비극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을 부정했던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이 나라의 저력을 인정했어야 옳다. 대통령이라면 보다 자랑스러운 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7년여. 이제 그를 놓아줄 때가 됐다. 그의 그림자에서도 벗어날 때다. 노무현의 유령과 싸우는 한 우리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송민순 회고록#노무현#문재인#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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