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 놓고 한치 양보없는 ‘끝장 결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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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철밥통 깨기, 교섭대상 아니다” vs 노조 “효율성 내세워 勞 힘빼기”
양대노총 18년만에 동시파업 가능성

 이번 ‘파업 정국’의 핵심 쟁점은 성과연봉제다. 정부는 공공, 금융부문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철밥통’을 깨고 청년 채용도 늘리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노동, 금융개혁의 걸림돌인 공공, 금융부문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 1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지침을 발표하면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면 노조 동의 없이도 임금체계를 바꿀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지침 발표 이후 공공기관 120곳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이 중 54곳(45%)은 노조 설득에 실패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1월 발표한 지침에 따라 성과연봉제가 불이익이 아니고, 노조가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사회 의결만으로 도입해도 된다는 판단이었다.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간 금융회사도 도입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성과연봉제가 적용되면 근로조건의 핵심인 임금 체계에 노조가 개입할 근거가 사라져 저절로 노조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노동계는 또 정부가 내세운 효율성, 청년 채용 확대는 정치적 명분에 불과하고 실제론 ‘노조 힘 빼기’가 목표라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파업 전 정부와 직접 교섭을 요구했다.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 여부와 내용을 결정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처음부터 성과연봉제는 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또 공공, 금융 등 임금과 근로조건이 매우 좋은 ‘철밥통’에 대한 여론이 나쁜 상황에서 파업 동력이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고 봤다. 파업을 해봤자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교섭 없이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성과연봉제 확산의 직접 당사자들인 공공, 금융부문 소속 산별노조가 이번 파업을 주도하게 됐다. 특히 23, 27일 각각 파업에 나선 금융노조(10만 명)와 공공운수노조(15만 명)는 금융회사와 공공기관 노조로 한국노총과 민노총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핵심 산별노조다. 양대 노총 조직의 역량을 집중시키면서 이번 파업에 ‘명운’을 걸고 있다.

 문제는 정부와 노동계가 이처럼 변변한 교섭이나 대화 한 번 없이 강(强) 대 강 대치만 하다가 결국 ‘끝장 결투’까지 온 만큼 이번 파업 정국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사실상 양대 노총의 주요 산별노조는 모두 이미 파업에 들어갔거나 사실상 준비 태세에 있다고 보면 된다”며 “1998년 이후 18년 만의 양대 노총 동시 총파업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정부와 노동계가 한 발씩 물러서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노동계가 자발적으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드는 통 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노동계도 맹목적인 반대 전략에서 벗어나 대안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성과연봉제 ::


연공과 서열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상승하는 호봉제와는 달리 직원들의 업무능력과 성과를 등급별로 평가해 임금에 차등을 두는 제도다. 정부는 공공부문과 금융부문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노동계는 강력 반대하고 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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