油化-건설, 반짝호황에 취해 경쟁력 강화 대책 흐지부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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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잃은 산업 구조조정]〈中〉 뒷전 밀린 ‘공급과잉 업종’ 수술

 4·13총선 직후 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 산업 경쟁력을 되살리겠다던 정부의 ‘호언’이 ‘허언’으로 흐르고 있다. 조선과 해운업은 정부 부처, 채권단, 민간 기업이 서로 책임만 미루다 생존의 기로에 몰렸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튼튼한 것으로 알려진 철강과 석유화학, 건설업 구조조정은 ‘수박 겉핥기’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당장 눈앞의 고비만 넘기자는 근시안적 태도로는 산업 구조개혁을 이뤄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주력산업이 중국으로 옮겨 가는 큰 흐름을 막기는 어렵다”며 “경쟁력이 떨어진 산업들의 생존에만 집착하느라 대체산업 육성이 늦어진다면 한국 경제는 장기 침체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글로벌 트렌드와 반대인 철강업 컨설팅

 27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 업계 구조조정 방안과 관련한 최종 컨설팅보고서를 한국철강협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는 조선업 부진에 따라 국내 7개 후판 공장 중 3개를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난해 국내 후판 생산량은 987만 t. BCG 제안대로라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각각 공장 4곳과 2곳 중 1곳씩을 줄이고, 동국제강은 후판사업을 접어야 한다. 하지만 철강업계에서는 ‘단순 감산’만 하다가는 결과적으로 연간 250만 t 규모인 중국산 후판 수입만 늘리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철강업체들은 이미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지난해 조강 생산량 기준으로 각각 세계 5위와 11위인 바오산(寶山)강철과 우한(武漢)강철의 합병이 성사된 데 이어 2위 허베이(河北)강철도 9위 서우두(首都)강철 인수를 준비하고 있다. 두 합병회사의 생산 규모(지난해 기준)는 각각 포스코의 1.4배, 1.8배에 이른다.

 한국 철강업체들도 이에 맞설 만큼 덩치를 키워야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시각이다. 수출입은행은 이달 초 세계 4위 포스코와 13위 현대제철 간 합병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합병이 어렵다면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강업체들 간 빅딜을 통해 각자 경쟁력 있는 제품군으로 특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민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희박한 시나리오다. 정부의 방향 설정이 중요하지만 모두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꺼리는 상황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30일 발표될 정부의 철강 및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이런 중장기적 대책이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달콤한 실적에 취한 석유화학·건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저유가 기조에 힘입어 올해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내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한화케미칼의 2분기(4∼6월) 영업이익은 각각 6939억 원, 2936억 원으로 분기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치였다. 문제는 이런 ‘깜짝 실적’이 구조적 공급 과잉 현상을 가리는 착시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수출 대상국인 중국의 석유화학 자급률이 2010년 64.9%에서 지난해 80.1%로 증가하면서 테레프탈산(TPA), 폴리프로필렌(PP) 같은 범용 제품의 대(對)중국 수출이 급감한 것도 위기 요인이다. 남장근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기업들은 규모가 작고 수는 많아 과당 경쟁 상황”이라며 “업체 수를 줄이고 기업 덩치를 키워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석유화학협회는 26일 베인앤드컴퍼니로부터 △TPA 생산량 감축과 일부 설비 통폐합 △폴리스티렌(PS)과 폴리염화비닐(PVC) 등은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높이기 위한 투자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컨설팅 보고서를 전달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이미 업계에서 시행 중인 사안이라는 지적이 있다. 건설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한건설협회 등에 따르면 이달 현재 10대 건설사(2016년 시공능력평가 기준) 중 자회사 매각 등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는 회사는 없다. 잠시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장 내년부터는 주택시장 전망이 밝지 않은 데다 건설사들의 주된 ‘먹거리’로 꼽히는 공공공사와 해외부문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이샘물·천호성 기자
#산업 구조조정#건설#철강업#유화#경쟁력#화학제품#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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