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유환]북한 붕괴론의 망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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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북한 붕괴론이 다시 부각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 핵심 엘리트층조차 무너지고, 이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권이 교체되거나 체제가 붕괴하려면 안과 밖의 엘리트층이 함께 무너지거나 조직화된 민중 봉기가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북한 밖에서 활동하는 엘리트층은 무너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안의 지배층은 여전히 지도자와 운명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일심단결’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대 국민국가에서 3대 세습에 성공한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3대에 걸쳐 수령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카리스마 권력은 위기의 시기에 나타나고 위기가 해소되면 법적·합리적 지배체제로 전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의 경우는 항일 무장투쟁의 혁명 전통에 근거를 둔 ‘백두혈통’이 권력을 잡은 이후 지금까지 3대에 걸쳐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위기의 지속이 카리스마 권력의 지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위기가 해소되면 카리스마 권력은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 북한에서 김일성 중심의 유일체제가 수립된 이후 한반도에서는 위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대남 도발 등 북한이 스스로 만들어낸 위기도 있고, 한미 동맹체제로부터 나오는 위협도 ‘피포위(被包圍) 위기인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외부의 적과 대치하고 있는 국가는 내부 문제로 쉽게 붕괴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은 외부의 적이 한둘이 아니다. 북한의 수령 독재권력은 외부 적들의 위협을 강조하며 인민들의 반복된 희생을 강요하면서 체제 결속과 정권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 지도자와 이익을 공유하는 지배층은 운명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어느 정도 결속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 정권 교체 또는 체제 붕괴가 이뤄지려면 지도자와 지배층 사이에 이익 갈등이 생겨야 한다.

대외활동을 하는 북한 엘리트들이 동요하는 것은 국제사회와의 접촉을 통한 인식 변화에서 오는 것이다. 노력한 만큼 개인의 자아실현이 가능한 국제사회의 보편원리를 체험하면서 수령 중심의 유일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탈북을 결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고위층 탈북은 김정은 집권 이후 공포정치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망명을 선택하는 경우가 다수를 이룬다. 자신들은 북한으로 돌아가더라도 특권을 누릴 수 있지만 자녀들의 미래를 수령체제에 가둘 수 없다고 보고 탈북을 결심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외부 세계를 경험한 북한 고위층과 주민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다. 국제규범과 동떨어진 수령체제의 미래가 어둡고 그러한 구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사회주의권 붕괴 무렵 동유럽에 유학 나왔던 특권층 자녀들이 귀국을 거부하고 한국행을 선택한 것도 조국과 부모를 버리더라도 자유를 선택하겠다는, 해외 경험을 한 북한 신세대의 변화된 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사회주의권 붕괴를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북한 붕괴를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지도자 죽음이나 고위 탈북자가 생기면 북한 붕괴론은 망령처럼 되살아난다. ‘기다리는 전략’도 북한 붕괴론에 근거한 것이다. 북한이 붕괴되면 핵문제도 해결되고 우리 주도의 통일이 이뤄질 것이란 희망적 사고가 북핵 고도화를 사실상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서구 경험이 있는 김정은 당위원장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것이 어렵다면 내부 엘리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장화 촉진 등 외부 세계와의 접촉면을 넓혀 나가는 전략적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래야 통일이 도둑같이 찾아온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붕괴론#태영호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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