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숨은 錢主… 수억 베팅 도박사-선수포섭 브로커 거느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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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스포츠 승부조작 ‘검은 거래’]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前-現 운영자 3인의 증언
기업형 브로커 조직 운영
선수들 음주량-컨디션 상태 등… 세세한 정보까지 돈받고 건네
브로커 대부분은 전직 운동선수
현역 선수들에 술-밥 사주고 용돈… “한번만 도와달라” 情에 호소
활개 치는 불법도박… 허술한 단속
고객 모집-직원 관리 갈수록 지능화… 분산된 감시 조직 통합운영 필요

《 승부 조작과 관련돼 영구 제명당한 스타플레이어는 한두 명이 아니다. 26일엔 프로야구 NC 투수 이태양이 승부 조작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명예는 물론이고 선수 생명까지 끝날 수 있는 승부 조작은 불법 스포츠도박과 연결돼 있다. 승부 조작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해외에 서버를 두고 불법인 사설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던 A 씨, 10년 이상 사설 스포츠베팅 사이트를 운영하며 본인이 직접 베팅을 하고 있는 B 씨, 사설 스포츠베팅 사이트를 운영하다 실형을 살았던 C 씨를 만났다. 이들은 승부 조작과 불법 스포츠도박의 세계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

 

○ 전주(錢主), 브로커, 그리고 승부 조작

이들은 수익률을 높이려는 불법 베팅사이트 운영 조직들과 높은 배당을 받으려는 고객들이 결탁해 승부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조직은 점점 기업화하고 있다.

B 씨는 “이른바 베팅에 돈을 대는 전주, 전주로부터 억대 돈을 받아 여러 사이트에서 베팅을 전문으로 하는 ‘도박사(베터)’들, 그리고 도박사들이 고용하는 선수 출신 전문 브로커가 모기업과 계열사처럼 한줄기를 이뤄 승부 조작에 개입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B 씨에 따르면, 전주가 승부 조작 전면에 나섰던 과거와는 다르게 전주가 도박사를 고용한 뒤 도박사가 다시 승부 조작 대상을 물색하는 브로커를 고용하는 이중 고용 구조가 업계에 정착됐다.

B 씨는 “도박사들 옆에 브로커들이 기생하듯 붙어 있다. 브로커 개인이 스포츠 에이전트처럼 활동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업체를 만들어 4, 5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면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핀다”고 말했다.

선수들과 직접 인연이 닿는 브로커들은 승부 조작을 성사시키는 일과 동시에 선수들의 구체적인 일과와 정보를 파악해 다른 베터들에게 팔기도 한다. 이 수익이 전주에게 가는 경우도 있고 브로커와 전주, 도박사가 나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B 씨는 “가격이 대폭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주식 정보는 아무나 받을 수 없듯이 이 업계에서도 선수의 ‘은밀한’ 일상에 관한 정보나 승부 조작 정보가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된다. 브로커에게서 여러 단계를 거쳐 나온 승부 조작 정보라도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이 넘기도 한다. 최초 출처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나도 중간단계 관계자에게 2000만 원을 주고 승부 조작 정보를 받아 베팅을 해봤다”고 말했다.

B 씨는 “전국 경기장을 가장 빨리 오갈 수 있는 대전 등 충남 지역에 전문 승부 조작 브로커 사무실이 대거 몰려 있다”며 “선수들의 음주 정도, 컨디션 상태 등 정말 친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정보와 개인 신상이 돈으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B 씨는 “운동을 함께 했던 선배 브로커가 선수들을 만나 술과 음식을 꾸준히 사주고 500만 원 정도 주머니에 넣어주면서 선수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이어 ‘형 믿고 한번 가보자’거나 ‘형 좀 도와줘’라고 하면 100명이면 100명 모두 넘어가게 마련”이라며 “조작에 가담한 선수들이 많은 돈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정에 끌렸거나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 치열한 고객 유치 경쟁

“요즘엔 단속보다 무서운 것이 고객(유저)들의 이탈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가 늘면서 운영 조직끼리 치열한 고객 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로 거액을 번 사례가 알려지면서 새롭게 뛰어드는 경쟁자가 많기 때문이다. A 씨는 “요즘 사이트들 사이에서는 유저들을 얼마나 끌어 모으느냐가 생명이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에 서버를 두고 사이트를 운영한 적이 있는데 별도의 홍보 마케팅 담당자를 두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저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생일을 모두 기록해 놓고 선물을 보냈다. 또 유저가 베팅을 하다 수사기관에 적발돼 벌금형을 받으면 벌금까지 대신 내줬다. 처음 가입하는 사람에게는 사이트 내에서 구매한 사이버머니 총액의 10%를 보너스로 줬다.

이렇다 보니 사이트 운영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는 “사이트당 하루 200∼300명은 놀아줘야 큰돈을 만질 수 있다”며 “요즘엔 단속보다 무서운 게 손님을 놓치는 것이다. 유저들이 우리 사이트가 아닌 다른 사이트에 가서 베팅을 할까 늘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규모가 큰 사이트에서 후발 주자인 작은 사이트를 상대로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로열티를 받는 경우도 빈번하다. C 씨는 “이쪽 업계에서도 소위 대기업 같은 업체가 있다”며 “신생업체에 운영을 지도해주고 수익의 20%를 로열티로 받는 게 관행이 됐다”고 말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5월 발표한 ‘제3차 불법도박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도박의 총 매출 규모는 약 21조8000억 원으로 2012년 발표한 ‘제2차 실태조사’ 때의 7조6000여억 원보다 크게 늘었다. 불법 스포츠도박단 수도 250∼365개에서 1000∼1520개로 4배 가까이로 늘었다. 그러나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당 1일 입금액은 2000만∼5억 원으로 큰 변동이 없다. 전체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은 커졌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이트별 수익률은 하락한 것이다.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내부 단속에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직원들이 수사기관에 제보하거나 비밀이 노출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직원들은 철저하게 지인들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들만 쓴다. 직원들끼리는 서로 실명을 모르게 하고 외국인 이름을 쓰게 한다. A 씨는 “인센티브나 휴가를 적절하게 주면서 회사를 나가지 못하게 한다. 한 달에 500만∼1000만 원은 벌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직원이 여기 오기 전에 PC방에서 하루를 보내던 ‘폐인’이 많았다. 보수가 높다는 소문이 돌아 조직에 들어오려는 경쟁률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돈 세탁’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적발되면 그동안의 수익을 모두 몰수당하기 때문이다. A 씨는 “이쪽 업체들은 돈 세탁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쓴다. 의류나 시계 등을 수입하는 사업체로 가장해 정상적인 지출, 수입이 이루어진 것처럼 근거를 갖춰 놓는다”고 말했다.

B 씨는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하고 갈수록 사이트 가입도 신중하게 처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해외 인터넷주소(IP주소)로 들어오는 유저는 원천 차단한다. 외국 조직폭력배들이거나 수사 목적으로 접근한 유저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효율적인 단속 필요

B 씨는 “최근엔 스포츠를 좋아하는 고등학생도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어려서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그 나름의 보는 눈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으며 높은 배당률이 걸린 쪽에 베팅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학생 2, 3명이 베팅을 하면 주변 친구 10∼15명이 순식간에 함께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불법 스포츠도박의 폐해가 청소년에게까지 미칠까 봐 우려되는 부분이다.

현재 불법 스포츠도박을 감시하는 곳은 사감위의 불법사행산업감시신고센터,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스포츠공정문화팀, 경찰청 사이버수사국 등이 있다. 사감위와 공단은 불법 도박 신고를 받으면 확인한 뒤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 사감위와 공단 관계자들은 “수사권이 없는 상태에서 현장을 적발하고 감시하는 데 따른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사감위나 공단에 수사권을 준다 해도 사감위나 공단이 전국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전국을 커버할 수는 없다. 이들에게 수사권을 주기보다는 경찰의 인력을 더 확충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사감위나 공단, 경찰이 별도로 단속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들 사이의 정보 공유가 잘 안 된다”며 “어느 조직이 중심이 되든 불법 스포츠도박을 근절하기 위한 전담 조직 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재영 elegant@donga.com·이원홍 기자
이민형 인턴기자 연세대 경제학과 4학년
#불법#스포츠#승부조작#도박사#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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