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 출신 인류학자 “나의 한국인 뿌리찾기는 운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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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곤 美하와이대 교수 “한인 아내와 딸 낳은뒤 정체성 관심
일생동안 풀어야할 과제는 딱 2개… 친모 찾고 한반도 기원 밝히는 것”

‘한국의 인디애나존스’로 불리며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 중인 배성곤 미국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한국의 인디애나존스’로 불리며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 중인 배성곤 미국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미국 뉴욕에 살던 동양인 소년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낳아 준 부모도, 나이도, 생일도 몰랐다. 고인류학자가 돼 한국인의 뿌리를 좇게 된 것은 어쩌면 자신의 ‘근원’과 정체성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소년은 ‘한국의 인디애나존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배성곤(미국명 크리스토퍼 배) 미국 하와이대 인류학과 교수(45)는 한국인의 뿌리를 연구한다. 한반도 현생인류의 이동 경로와 그들 이전에 한반도에 살았던 인류의 운명을 알아내는 것이 목표다. 최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고인류학 분야에서 한국 관련 기록을 최대한 많이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이달 초 옛 사람들의 수렵 활동을 파악하는 단서인 사슴 화석 연구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만 1세 남짓이던 그는 1972년 3월 14일 서울에서 미아로 발견됐고, 그해 11월 미국 뉴욕의 백인 가정에 입양됐다. 지금 쓰는 생일과 나이, 이름은 발견 당시 그를 진찰한 의사가 정해 준 것이다.

미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인종차별이 심했다. 전교생 2000명 중 아시아계는 10명 남짓이던 시절이다. 양부모도 친아들이 생기자 그를 차별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네 부모는 일꾼이 필요해서 널 입양했대”라며 놀릴 정도로 집안일을 시켰다. 중학생 때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집에서 쫓겨났다. 그때마다 친구 집이나 근처 숲에서 잤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나온 그는 양부모와 연락을 끊었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학비가 없었다. 햄버거 가게 주방 보조를 비롯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교 졸업 1년 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인류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양부모가 집세를 내라고 해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는데, 그게 대학 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하며 웃었다.

유년 시절 겪은 차별과 시련은 자연스레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으로 이어졌고, 인류학이 숙명처럼 다가왔다. 배 교수는 “전체가 아닌, 파편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해 나가는 인류학이 마치 나 자신의 뿌리 찾기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6년 전 한국인 부인과의 결혼은 그가 자신의 뿌리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해 줬다. 중국 베이징의 인류학 연구소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이었다. 배 교수는 “결혼 후 진짜 한국인의 삶이 어떤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명함에는 ‘배성곤’과 ‘Christopher Bae’가 함께 적혀 있다. 그는 양부모의 성을 쓰다가 결혼 후 지금의 성으로 바꿨다. 딸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 주고 싶어서다. 그는 “진짜 이름은 아니지만 나와 딸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나와 한국 현생인류의 뿌리를 찾는 것, 두 가지 모두 내가 일생 동안 풀어 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꼭 친어머니를 찾고 싶어요. 딸아이를 키우다 보니 ‘한 살 무렵 미아가 되기 전까지는 내 어머니도 나를 사랑으로 보살폈겠지’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인류학자#배성곤#하와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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