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대한민국에서 ‘남자답게’ 산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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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오찬호 지음/312쪽·1만4500원·동양북스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권용득 지음/360쪽·1만3000원·동아시아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의 저자인 권용득 씨가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그린 단편 만화 ‘승현이의 세가지 소원’ 중 일부. 만화가인 아빠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고 엄마는 집에서 밥을 하는 등 가사 분담 내용이 담겨 있다. 동아시아 제공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의 저자인 권용득 씨가 자신의 가족을 소재로 그린 단편 만화 ‘승현이의 세가지 소원’ 중 일부. 만화가인 아빠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고 엄마는 집에서 밥을 하는 등 가사 분담 내용이 담겨 있다. 동아시아 제공
근래 인터넷에서 남녀 사이의 적대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하는 전쟁 수준이다. 오랫동안 ‘○○녀’ 딱지 붙이기 등 ‘여혐’(여성혐오) 공격이 일방적으로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같은 방식으로 ‘남혐’(남성혐오)을 표현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등장하는 등 반격도 거세다.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의 저자는 본인의 표현대로 이 전쟁에서 ‘전향자’다. 남성 사회학자인 저자는 과거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던 시절 여성 노동을 토론하다 “차별을 말하지만 어쨌든 초등학교 여교사가 신붓감 1순위 아닙니까?”라고 하는 등 보수적 언행으로 핀잔을 듣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의 출산을 소재로 인터넷에 글을 썼다가 “출산을 감히 군 복무와 비교했다”는 남성들의 댓글 융단폭격을 받은 뒤 ‘남자들의 세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살기 힘들어졌다’는 말은 얼마나 사실일까. 책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에서 한국은 성 평등지수가 0.651(남성에 비해 여성은 65% 정도의 정치 경제적 권리를 누린다는 뜻)로 145개국 중 115위였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은 나라는 여성이 운전면허를 받을 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134위), 여자가 남자 배구 경기를 관람했다가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는 이란(141위) 정도였다.

저자는 남자들이 병영생활 등을 통해 어떻게 남성우월주의를 체화했는지, ‘개저씨’(개념 없는 아저씨를 비하한 말)들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 남성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왜곡된 인식을 조목조목 파고든다. 보수적 남성에게는 당연히 불편한 책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생각을 비롯해 의견이 다른 구석도 꽤 있지만 기자는 적지 않게 찔렸다. 저자는 “‘인간답게’ 대신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말만 부유하는 곳에서는 일그러진 인간들만이 활보한다”고 지적한다.

반면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는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한 남자 만화가가 쓴 일상 이야기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아내도 만화가다. 부부는 각자의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철저하게 가사를 분담했다. 엄마들이 주도하는 유치원 바비큐 모임이나 학부모 참관수업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하던 저자는 가정통신문에의 부모 직업 설문지에 ‘주부’라고 쓸까 고민한다. 일상을 진솔하게 담은 글에 미소가 나온다.

39세인 저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전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아버지·남편상을 보여준다. 부제는 ‘남자 망신 에세이’이지만 가족이 함께 행복해진다면 좀 망신을 당한다 해도 무슨 상관이랴. 저자는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 결혼한 것은 아니다. 일이든 육아든 서로 공평하게 하려 한 건 아내, 남편, 엄마, 아빠 등 주어진(고정된)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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