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국회 주도의 개헌에 반대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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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헌법의 최대 기득권 집단… 국회의 저열한 수준 그대로 둔 채
제왕적 대통령 견제 명목으로… 내각제 개헌은 국가적 자살행위
차라리 대통령이 적극 나서 賢者들 모아 개헌안 만들어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뭘 하겠다고 나서면 겁나는 사람들이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1987년 학문적으로는 족보가 없는 ‘경제 민주화’란 말을 헌법에 집어넣은 사람이다. 그가 얼마 전 국회 원내 교섭단체 연설에서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고 내각제 개헌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경제 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란 말은 있다. 그 말을 옛 유고 공산주의식 ‘노동자 자주(自主) 관리’의 의미로 쓴 과거 예일대의 로버트 달 같은 진보적 정치학자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경제 민주화를 이런 뜻으로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쓰는 사람 입맛대로 쓰고 있다. 의미의 과잉은 문학에서라면 몰라도 법에서는 곤란하다.

김종인은 과대평가된 주식과 같다. 경제학자 출신인 그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사이사이에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쓴 책이라고는 신통치 못한 잡설을 모은 것 말고는 거의 없다. 체계적인 책은 1980년 ‘재정학’이 유일하다.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 나눠 쓰자는 간단한 얘기를 700쪽 넘게 지루하게 늘어놓은, 아무도 인용하지 않는 책이다.

헌법은 기본권과 통치구조를 다룬다. 헌법은 공정거래법이 아니다. 제헌헌법부터 들어있던 ‘경제’라는 촌스러운 장은 87년에 이르러서는 없애야 마땅했다. 그것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더 장황하게 만든 장본인이 김종인이다. 그가 이번엔 87년 헌법의 문제점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승자 독식 권력 구조’를 들고나왔다. 이제 통치구조에까지 손을 대겠다니 난감할 따름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인식에 반발한 사람은 뜻밖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지금의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을 걱정하는 것보다 오히려 대통령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과 권력적 기반으로 인해 주어진 헌법적 기능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87년 헌법을 낳은 민주화 이후에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불법 정치자금을 움직여 국회에서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노무현 이후 이런 것은 사라졌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임기 전반에는 지지 기반을 유지하다가도 후반에는 지지 기반이 이탈하면서 레임덕에 빠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런 건 대통령들의 인식일 뿐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그런 경우에도 국회가 대통령을 향해 제왕적이라고 할 때는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백낙청 전 창작과비평 대표는 2014년 창비 겨울호의 ‘큰 적공(積功), 큰 전환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국회의 개헌 논의에 대해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87년 체제의 최대 기득권 집단 가운데 하나인 국회의원들끼리 추진하는 개헌이라면 기득권자의 담합 이상이 되기 어렵다”고 썼다.

국회에서 나오는 개헌 얘기는 내각제란 말이 앞에 붙어있지 않아도 내각제 개헌으로 새겨들어야 한다. 87년 헌법으로 최대 기득권 집단이 되고,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여야가 기득권을 나눠 갖는 시스템까지 만들어 놓은 국회는 대통령령 수정권, 수시청문회 개최권 등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권한 강화를 추진해왔다. 내각제 개헌 추진은 이참에 국회가 아예 대통령을 해먹겠다는 것이다.

헌법이 정한 개헌 절차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국회가 직접 발의해 국민투표로 가는 경로와 대통령이 발의해 국회를 거쳐 국민투표로 가는 경로다.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데는 여야가 한통속이다. 대통령에 의해 거부된 국회의 대통령령 수정권, 수시청문회 개최권은 여당이 승인하거나 앞장서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여당을 믿고 손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회가 움직이면 대통령도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은 나라의 현자(賢者)들을 모아 독립된 기구를 만들어 헌법 개정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협치(協治)라는 번드르르한 포장재로 내각제로 가는 길을 닦고 있는 국회에 개헌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국회는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꾸는 대(大)변화를 감당할 전문성도 없는 데다 국회의 저열한 지적 수준과 책임 의식, 특권 집착과 갑질 관행을 고려하면 내각제는 우리나라에는 국가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경제 민주화#헌법#개헌#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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